“15억 1채 물려줘도 0원”… 與野 상속세 완화 경쟁 [뉴스분석]

김현우 2024. 8. 2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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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층 잡기 쟁탈전
與 최고세율 낮추는 정부안에 더해
공제한도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
野선 공제한도만 높이는 법안 내놔
조만간 감세폭 조율해 처리 가능성
정부, 자녀1명 공제 5000만→ 5억
민주, 배우자 공제 등 상향안 내놔
與도 최대 20억원까지 공제 추진
이재명, 대선 대비 ‘우클릭 행보’
최태원 등 내달 경제단체장 회동
한동훈 “금투세 폐지는 청년 문제
시행불안감 없애야” 민주당 압박

서울 집값이 들뜨는 와중, 여야가 경쟁하듯 상속세 완화안을 내놓고 있다. 여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낮추는 정부안에 더해 공제 한도도 높이자는 방향으로, 야당은 공제 한도만 높이는 방향이다. 정부안은 물론이고 여야 법안대로라면 현재 웬만한 서울 아파트 1채는 배우자와 자녀에게 물려주더라도 상속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상속세는 기초공제 2억원에 인적공제를 합한 금액 또는 일괄공제 5억원 중 큰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다만 인적공제와 기초공제를 합쳐 일괄공제 5억원을 넘게 받기 어렵다 보니 보통 일괄공제를 받는다.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 뉴스1
인적공제는 자녀가 있거나 상속인(재산을 물려받는 사람·배우자 제외) 및 동거가족 중에서 연로자나 미성년자, 장애인이 있으면 받을 수 있다. 현재 자녀에게는 1인당 5000만원을 공제해준다. 배우자는 최소 5억원의 상속공제를 받는다. 배우자 1명과 자녀 2명에게 아파트를 물려준다면 배우자 최저한도 5억원에 일괄공제 5억원을 더해 총 10억원을 공제받는다.

정부안은 배우자 공제(5억∼30억원)와 일괄공제는 유지하되 자녀 1명당 공제금액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올리는 게 골자다. 자녀 1명과 배우자에게 상속한다면 기초공제 2억원에 자녀공제 5억원을 선택하고 배우자공제 5억원까지 더해 12억원까지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자녀공제를 늘리는 게 다자녀 가구에 대한 정책적 배려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도 상속세 부담 완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당 정책위 상임부의장에 임명된 초선 임광현·안도걸 의원은 하루 간격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임 의원 안은 현행 상속세 일괄공제를 5억원에서 8억원으로, 배우자 공제액은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각각 높이는 내용이다. 안 의원 안은 상속세 일괄공제 금액과 배우자 공제금액을 각각 현행 5억원에서 7억5000만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을 내놨다. 각각 최대 총액 18억원, 15억원 아파트까지 상속세 공제가 가능해진다.
대화 나누는 韓·秋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왼쪽)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송언석 기획재정위원장 주최로 열린 ‘국내 자본시장과 개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정책 토론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국민의힘도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는 법안을 하나둘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일괄공제액 10억원·배우자 상속공제 최저한도를 10억원으로 높여 총 2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는 안을, 김은혜 의원은 일괄공제 금액을 10억원으로, 기초 공제액을 2억원에서 5억원으로 높이는 안을 내놨다. 지난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218만원이었다. 여야 논의 교집합대로 배우자 공제 한도가 최소 15억원까지 높아진다면 웬만한 서울 아파트는 상속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상속세 논쟁은 사실상 이재명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18일 연임을 확정한 직후 상속세율 완화는 반대하지만 상속세 일괄공제 및 배우자 공제 금액은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9월5일 국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을, 11일에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경제 분야 쟁점 법안은 물론 상속세 등 세제 개편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대한상의·중기중앙회 등은 최근 한국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 기업 기업 가치가 훼손된다며 개편을 촉구한 바 있다.

이 대표의 상속세 완화 움직임은 사실상 대선에 대비한 ‘우클릭’ 행보로 여겨진다. 특히 민주당 안을 내놓은 두 의원 모두 이 대표 2기 지도부 정책을 만든 인사들이다. 임광현 의원은 국세청 차장 출신이고 안도걸 의원은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냈다. 조세·예산 관료 출신들을 배치, 사실상 ‘대선 대비용’ 인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의 ‘우클릭’은 사실상 중산층을 위한 구애 전략이다. 두 의원 모두 개정안 제안 이유에 ‘중산층 세 부담 완화’를 기재했다. 임광현 의원은 “과거 일부 고액자산가만 부담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상속세가 중산층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밝혔다. 안도걸 의원은 “5년 전 대비 상속세 대상은 2배 정도 늘었는데 상속 재산이 20억원 미만인 경우가 전체 증가분의 69%”라며 “상속세 과세 대상을 줄이고 중산층 상속세 부담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하향하는 정부 안에 관해서는 반대 입장을 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상속세 최고세율을 적용받은 전체 피상속인은 6.3%, 1251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낸 세금은 전체 상속세수 중 80.7%, 9조9158억원인 데다 최고세율을 10%포인트 낮춘다면 1인당 감세액은 약 14억원에 이른다. 세율을 직접 건드는 것에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중산층 핀셋 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국민의힘은 상속세 공제를 포함, 상속세율 완화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부터 상속세를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높은 상속세율로 기업인의 부담이 만만찮아 해외로 내몰렸고, 결과적으로 국내 투자와 고용도 축소된다는 취지였다. 13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는 “정부 감세 정책은 대개 민생 안정과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거나 미래 투자 활성화를 위한 것이고 중산층의 비정상적인 징벌적 과세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1400만명의 개미 투자자들과 상당수 청년 표심 공략을 위해 금투세 폐지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가뜩이나 박스권에 갇혀 있는 국내 증시에서 ‘큰손’이 빠진다면 주식 시장은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취지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남제현 선임기자
한동훈 대표는 이날 송언석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국내 자본시장과 개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금투세 폐지 정책 간담회’에서 “금투세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며 “(금투세는) 1400만 투자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청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반드시 금투세 폐지를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향해 “내년 1월1일부터 이 법이 시행되지는 않는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자”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 금투세 폐지를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금투세와 관련, ‘유예’에서 ‘완화’로 방향을 틀고 있다. 현재 5000만원으로 돼 있는 투자소득의 공제 한도를 1억원으로 올려 부담을 완화하자는 게 이 대표 주장인데 당 소속 기재위원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금투세에 대한 공포는 과장된 면이 크기 때문에 완화 주장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김현우·김나현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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