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또또사’ 김문수, 2024년 ‘태극기’ 김문수

황보연 기자 2024. 8. 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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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김문수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7월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 브리핑에 참석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보연 | 논설위원

1993~94년 노동정책을 이끈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회고록에서 “노태우 정권까지의 노동정책은, 치안정책이었다. 노동 문제에 경찰·검찰 입김이 압도적이었고 경찰국장 출신이 잇달아 노동청장이 된 적도 있다”고 돌아봤다. 그는 보수 정치인 출신이지만 “당시의 시대 상식에 맞추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순리라고 여겼다. ‘뜨거운 감자’였던 민주노총(당시엔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합법화에 대한 지론이 그랬다. 민주노총에 ‘불법’ 딱지를 붙이던 시절이었지만, 남 전 장관은 “거의 모든 대기업 노조가 가맹하고 있고 노사분쟁의 주요 당사자인 민주노총을 인정하지 않아, 대화 상대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난센스”이자 “노동부의 직무유기”라고 봤다.(‘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 2006년 출간)

지난달 말 윤석열 대통령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극단적 우편향 행보가 국무위원 자질 논란으로 번진 것인데, 그중에서도 ‘노조 혐오’ 인식은 특히 문제적이다. 민주노총을 “물리쳐야 할, 김정은의 기쁨조”로 전락시키는가 하면 “불법파업엔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2024년 노동정책의 시계가 과거 남 전 장관이 언급한 문민정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정도다.

윤 대통령은 왜 이런 ‘반노동’ 인사에게 노동정책을 맡기려는 걸까? 2년 전 윤 대통령은 김 후보자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한 뒤, 죽 노동 문제에 관한 조언을 들어왔다고 한다. “1970~80년대 노동 현장을 뛴 분이라 진영에 관계없이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현장을 잘 아는 분”이라는 게 당시 임명 배경이었다. 이번엔 “노동개혁의 적임자”라고 했다. 김 후보자 역시 본인에 대한 비난이 억울하다는 듯 반문한다. “저와 아내가 노조 출신이고 형님과 동생도 그렇다. ‘반노동’이 뭔지 묻고 싶다”고.

한때 그는 “전설적 노동운동의 대선배”였다.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대학 공부를 그만두고 청계천 피복공장으로 갔다. 한자투성이 근로기준법을 읽고 싶었던 전태일의 뜻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똑딱이 단추를 다는 ‘또또사’로 일하며 노동자들과 함께 지냈다. 한일도루코에 보일러공으로 입사해선, 노조를 이끌고 파업을 주도했다. 엄혹한 유신 시절, 학생운동가들은 세상을 바꾸려면 노동 현장에 투신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 중에서 1970년대 유일하게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펼친 이가 ‘한일도루코의 김문수’였다.(‘학생운동가들의 노동운동 참여 양상과 영향-1970년대를 중심으로’, 유경순)

하지만 그는 1994년 민주자유당 입당 이후론 자신이 걸어온 길을 철저히 부정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기존 사회주의 운동 노선에 회의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3선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를 지낸 뒤 그의 사상은 갈수록 극우로 치달았다. 여전한 사회변화의 갈망은 뒤틀린 이념으로 발현됐다. ‘아스팔트 극우’로 불리는 태극기 부대와 함께 움직이고 세상 모든 일에 ‘색깔론’을 들이댔다. “뻘건 윤석열이가 죄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잡아넣었다”(2019년 정권퇴진 집회)고 한 발언이 최근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신을 장관으로 지명한 대통령조차 과거에 ‘빨갱이’로 몰았던 비상식적 전력까지 드러난 것이다. 김 후보자가 ‘잘 안다’는 노동 현장은 1970~80년대가 전부이고, 그에게 노조는 “헌법상 특권을 악용해 우리 경제를 다 망치는 빨갱이 집단”일 뿐이다.

김 후보자만 두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윤 대통령의 그릇된 노동관이 ‘김문수 기용’이라는 “최악의 인사 참사”를 불렀다. 이 정부의 ‘노사법치주의’와 김문수의 ‘노조 혐오’는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건설노동자를 ‘건폭’(건설폭력배)이라 몰아붙이고 농성 노동자를 과잉진압하는가 하면, ‘노조 회계 투명성’이라는 명분 아래 실상은 ‘노조 때리기’에 골몰했다. 노사정 관계의 핵심인 대화와 협상은 실종되고 노사 갈등의 분출(노사분규 건수)은 더 많아졌다. 대통령이 노동개혁 과제로 앞세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대기업 정규직 조직 노동자만 다그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격차 해소를 위한 큰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요원한 일이다. 하물며 대화 상대를 인정조차 하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는 26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김 후보자의 과거 행적만 캐물어선 안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제대로 따져 물어야 한다. 혹여 공권력으로 노조 위에 군림하려는 것은 아니냐고.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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