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폭염 속의 닭장

정유진 기자 2024. 8. 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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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35도, 습도 60~70%의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에어컨은커녕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보자. 심지어 그 방에는 당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빽빽이 에워싸고 있어서 팔을 접어 펼 수조차 없다.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 일이 지금 닭과 돼지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폭염으로 국내에서 폐사한 가축이 100만마리를 넘어섰다. 양식 중인 어류도 1000만마리 이상 떼죽음 당했다. 폐사한 가축들은 닭·오리 같은 가금류가 93만7000마리, 돼지가 6만마리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축사마다 대형 선풍기를 돌리며 더위와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농가들은 사육장에서 닭의 사체를 치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폭염으로 힘든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사실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는 인간에게 사육·양식되는 동물들이다. 사람은 더우면 땀이라도 발산하지만, 돼지는 땀샘이 발달돼 있지 않아 기온이 28도를 넘어서면 체온 조절이 불가능해진다. 이럴 때 돼지는 진흙 구덩이에서 뒹굴며 체온을 낮추곤 하는데,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공장식 축사에 갇혀 있는 돼지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양식장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도 수온의 변화로 물속 산소량이 부족해졌지만, 산소를 찾아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풍경은 폭염 속의 닭장이다. 공장식 케이지에 갇혀 사육되는 닭들은 마리당 차지할 수 있는 면적이 A4 용지 한 장 크기인 0.06237㎡보다도 좁다. 닭은 원래 체온이 높은 데다 온몸이 깃털로 덮여 있어, 호흡으로 몸을 식힌다.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 분당 20회 쉬던 숨을 240회까지 헐떡거리지만, 공기 중 습도가 50% 이상일 땐 그조차 불가능해진다. 가뜩이나 열에 취약한 닭들이 좁디좁은 축사 안에서 서로의 깃털에 파묻혀 말 그대로 ‘쪄 죽고’ 있는 것이다.

오는 9월7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에서는 기후변화의 ‘피해 당사자’인 비인간동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행사가 처음 포함된다고 한다. 지금 기후정의가 가장 절실한 존재는 에어컨 바람 아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기후와 공장식 축사 때문에 고통받는 비인간동물들이 아닐까.

밀집식의 양계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삼계탕용 백세미들의 모습. 동물해방물결 제공.

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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