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고아성 만나 ‘훨훨’[인터뷰]
‘한여름의 판타지아’,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등으로 독립·예술 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린 장건재 감독. 그가 배우 고아성을 만나 날개를 훨훨 펼친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은 22일 스포츠경향과 만나 고아성이 영화 제작에 어떤 힘이 돼줬는지, 그리고 한국 사회를 강타한 ‘헬조선 담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들려줬다.
“고아성이라는 30대 스타가 합류하면서 스태프와 배우들을 뉴질랜드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이 생겼어요.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도 고아성 배우의 합류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개막작이란 영화제를 여는 슬로건과도 같은데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렸네요. 이제는 수습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고아성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장 감독에게 큰 힘이 됐다. 장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던 시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상당 부분의 로케이션이 해외에 있어서 촬영은 차일피일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거의 포기할 때쯤 고아성의 말 한마디는 영화 제작에 대한 장 감독의 의지를 다시 한번 불태웠다.
“‘코로나19’로 해외로 가지 못해 촬영이 지연됐습니다. 이때 고아성이 ‘우리 어떡하죠?’라고 말했어요. 이 말에 아, 이제 ‘우리’구나, 고 배우가 아직 작품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또 고 배우는 저한테 ‘영화를 너무 가난하게 찍어서 해야 하는 걸 못하진 말자’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도 제게 위안이 됐습니다.”
극 중 고아성은 한국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뉴질랜드로 떠나는 20대 후반 여성, ‘계나’를 연기한다. 장 감독은 1977년생으로 불혹을 넘긴 나이다. 그렇기에 장 감독은 고아성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려고 노력했다.
“당사자성을 확보하려 노력했습니다. 배우들 모두 30대로 접어들어서 영화에 나온 인물들과 비슷한 경험을 이뤘습니다. 고아성 배우도 마찬가지였죠. 특히 고아성 배우는 필모가 상당히 화려하지만 열려 있습니다. 동료 창작자로서 언제든지 소통할 준비가 돼 있었죠. 어쩔 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신을 축소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을 때도 고아성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도록 제게 힘을 줬습니다.”
■“‘헬조선’서 20대 함께 보낸 계나에게 고마워”
장건재 감독은 ‘헬조선 담론’ 등 2010년대 한국 사회를 강타한 여러 이슈를 견뎌내고 살아온 인물인 계나를 통해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부조리들을 섬세하게 건져 올린다.
“계나는 2024년 서른을 맞이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일 때는 또래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다가 침몰하는 걸 목격했을 테고, 직장 다녔다면 친구들이 핼러윈에서 스러져 간 것을 경험한, ‘생존한’ 여성입니다. 운이 좋게 비켜나간 걸 수도 있지만, 살아남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 7~8년간 작업하면서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감독으로서 뿌듯함보단 계나와 함께 20대를 보냈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장 감독은 2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이라고 지적하며 “자살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암으로 죽는 것 아니냐”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만큼 그가 생각하는 한국은 ‘행복하지 않은 나라’였다.
“정상성이 하나의 규범으로 작동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이반이 되는 사회가 한국입니다. 그런 면에서 후퇴했다고 볼 수 있죠. 변화가 빠른 나라이면서도 보수적입니다. 계나 역시 어떤 측면으로 봤을 땐 정상성 규범에 들어간 인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계나가 문득 느끼는 것들을 대사로 표현했는데, 그런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또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그 문제를 지적했으면서도 장 감독은 이 영화가 정치·사회적인 영화로 읽히지 않기를 원했다.
“세월호 참사, 강남역 묻지마 칼부림, 핼러윈 참사 등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건드리는 책이나 소설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메시지를 중복하기보다는, 비슷한 지점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풍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게 바로 이 영화입니다.”
한편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계나(고아성)가 갑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아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시대를 아우르는 공감과 희망의 메시지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는 28일 극장 개봉.
서형우 온라인기자 wnstjr140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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