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어 아너’, 시청자의 영광을 위하여[스경연예연구소]
배우 손현주와 김명민은 각자 30년이 넘은 연기경력을 갖고 ‘연기본좌’의 칭호를 갖고 있지만 한 번도 같은 작품에서 만난 적은 없다. 손현주는 1991년 KBS 공채 14기로 데뷔했고, 김명민은 1996년 SBS 공채 6기로 데뷔했다.
흥미로운 것은 각자 ‘이순신’을 소재로 한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다. 김명민은 2005년 KBS1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역으로, 손현주는 2022년 영화 ‘한산’에서 그와 대척하는 원균 역을 맡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 둘은 이번에는 한 작품에서 대척하는 역할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12일 첫 방송 된 지니TV 오리지널로 ENA서도 방송 중인 월화극 ‘유어 아너(Your Honor)’에 출연 중이다. 이 작품은 2017년 이스라엘에서 방송된 ‘Kvodo’가 원작으로 2020년 미국판도 방송됐다.
한국판은 표민수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제작진은 프리 프로덕션 즉 제작 전 사전작업에 1년이 넘는 기간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명민이 “긴 시간을 기다리며 언제 공개될 수 있는지 고대하던 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제작사 측은 “꼼꼼한 사전 작업을 위해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의미가 생긴 분위기다.
드라마는 우연한 사고로 인해 사람을 죽인 아들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판사 송판호(손현주)와 그 사고로 죽은 아들을 위해 복수를 결행하는 조직의 보스이자 그룹의 회장 김강헌(김명민)의 대립을 다뤘다. 이스라엘이나 미국판이 아들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한 법조인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국판은 조직 보스의 덩치를 키워 부성애를 기반으로 한 두 주인공의 대립에 좀 더 중점을 둔다.
닐슨 코리아 집계 전국 유료가구 집계에서 지난 12일 1회 1.7% 정도였던 시청률은 20일 방송된 4회에서 3.7%를 찍었다. 약 2배 이상의 상승세를 거둔 셈이다. 비록 10부작의 짧은 길이이지만, ENA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5% 이상 내심 7~8%의 성적도 거둘 수 있는 추세다. 고무적인 것은 시청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그 바탕에는 탄탄한 두 주인공의 연기력이 녹아있다. 손현주와 김명민은 각각 ‘연기본좌’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열연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두 아버지는 차가운 얼굴 밑으로 깊은 욕망을 숨기고 있다. 손현주는 우연한 사고로 사람을 죽인 아들의 피해자가 권력자의 아들임을 알고 복수가 두려워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다. 그는 판사 경력으로 얻은 갖은 지식을 통해 범죄를 은폐한다.
김명민은 교도소에서 드라마를 시작해 아들의 부고를 듣는다. 차가운 눈빛으로 애꿎은 담배를 태우다가, 아들의 시신을 눈으로 확인한 이후 처참하게 무너진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냉정한 분석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굳이 대사가 많지 않은 작품임에도 설득력이 올라가는 이유는 두 배우가 비언어 연기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두려움, 복수심 등이 복합된 충혈된 눈과 꽉 다문 입 그리고 호흡을 보여준다. 4회 말미 두 사람이 직접 마주한 순간에는 연기 차력쇼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눈빛에 불꽃이 튄다.
이런 대립을 지탱하는 것은 탄탄한 대본이다. ‘유어 아너’는 쿠팡플레이 ‘소년시대’를 쓴 김재환 작가가 대본에 참여했다. 그리고 ‘종이달’ ‘60일, 지정생존자’ 등 인간의 욕망과 딜레마를 주로 다룬 유종선 감독의 연출이 이어졌다. 표민수 감독은 이들을 모두 배치했다.
대본은 살인사건의 은폐와 추적을 주된 줄거리로 그리면서 소소한 반전을 배치했다. 예를 들면 초반 김강헌이 찍은 용의자가 사실은 아니었다던가, 그런데도 김강헌의 큰아들 김상혁(허남준)이 경거망동으로 엉뚱한 사람을 해코지하며 사면초가에 빠진다든가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김강헌은 추적의 끈을 놓지 않고 결국 대면 후 한 번에 송판호를 없애려던 김강헌의 계획은 김상혁의 체포로 딜레마에 빠지는 장면이다.
그 사이 송판호는 자신의 목숨과 김강헌 아들의 석방을 교섭하려 시도하고, 이를 받아들인 김강헌은 대신 계약서로 판사 송판호가 직접 사람을 죽이게 만들어 이를 기록한다. 이 사이 송판호의 아들 송영호(김도훈)와 김강헌의 딸 김은(박세현)은 가까워진다.
대본의 퀄리티를 올리는 것은 조연들의 연기다. 천식으로 생긴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빠지는 송영호 역 김도훈과 김강헌의 폭주하는 큰아들 김상혁 역 허남준은 극의 축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정이화 역 최무성, 김강헌의 충직한 부하 박창현 역 하수호, 하청업체 부두파 보스 조미연 역 백주희, 송판호를 조력하는 형사 장채림 역 박지연의 연기 등이 뒤를 받친다. 이후 이들을 모두 쫓는 검사 강소영 역 정은채의 활약도 예고돼 있다.
제작을 위해 길었던 기간 만큼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에너지가 프레임을 통해 분출하고 있다. 물론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흐르는 시기 덕에 로맨스물이 강세를 보이지만, ‘유어 아너’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원래 뜻과 비길만한 ‘존경하는 시청자님’의 마음속에 영예로 자리할 공산이 커졌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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