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배터리 연구 '가속'…공급망·원가경쟁력 확보 포석
축구장 36개 규모 연구단지
2027년께 완공 목표로 추진
"배터리 공급에만 의존하면
전기차 시장 선도 힘들어"
미래 수요증가 대응하며
장기적으로 기술 주도 노려
현대차그룹이 수천억 원을 투자해 경기도 안성에 대규모 배터리 연구·검증시설을 세우기로 한 것은 핵심 부품 내재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풀이된다. 완성차 원가에서 40%를 차지하는 데다 전기차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지 않고서는 전동화 주도권을 쥘 수 없다는 판단이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내재화로 원가 절감과 공급망 안정을 노리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부족 사태처럼 부품 공급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을 막아야 한다고 인식한 것이다. BYD처럼 막대한 설비투자 비용을 감당하며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기보다 설계 주도권을 가져가는 방식을 택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자체 설계 기술이 있으면 배터리 기업과 벌이는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자체 구동 시스템과 시너지를 내며 제품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
아울러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도 구현할 수 있다. 배터리 핵심 설계와 생산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면 공급난이 발생하거나 기존 협력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생산 전문업체에 생산을 맡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안성에 마련하는 축구장 36개 규모 연구 거점에서 전기차 배터리 핵심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양산성과 제품성을 검증하는 테스트까지 이곳에서 실시하겠다는 목표다. 배터리 설계나 핵심 기술을 확보해 '배터리 팹리스'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팹리스란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신제품 개발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필요한 사양대로 배터리를 소량 제작해보고 테스트까지 한번에 가능하게 되면 신차 개발 패러다임도 바뀔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체 전기차 플랫폼인 E-GMP에 특화된 배터리 설계에 직접 나서 가장 최적화된 배터리를 만들어낸다는 장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기업은 전기차 신차를 개발할 때 여러 시제품을 생산해 테스트해야 한다. 배터리 기업에만 의존하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면서 "몇 년 후 전동화 시장이 더욱 커질 것에 대비해 자동차 기업들이 준비를 해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속적으로 배터리 내재화에 고삐를 조여왔다. 약 300억원을 투자해 서울대에 배터리 연구센터를 지었고 경기도 의왕에도 배터리 연구동을 세우고 있다. 이곳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비롯한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현대차그룹이 처음은 아니다. 테슬라는 자체 4680 배터리의 설계를 넘어 양산까지 진행 중이라는 점이 현대차그룹과 차별화된다. 사이버트럭 등에 탑재하는 4680 배터리가 자체 생산품인데, 수율 문제로 양산계획을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BMW는 2022년 독일 파스도르프 지역에 'BMW 배터리 컴피턴스센터(BMCC)'를 개소했다. 이 연구시설은 실제로 배터리를 양산하는 곳은 아니다. 다만 시설 내부에 배터리 시험생산 설비를 설치해 실제 설계부터 양산까지 시험해볼 수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2022년 배터리 생산 자회사 파워코를 설립했다. 파워코는 2030년까지 유럽에만 240GWh(기가와트시) 규모 배터리 생산공장 6곳을 세울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안성에 배터리 연구소를 설립하면 남양연구소·의왕연구소·마북기술연구소와 함께 연구개발(R&D) 4대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남양연구소는 차체 등 종합연구, 의왕연구소는 전동화기술 개발, 마북연구소는 미래차 부품 기술에 특화된 곳이다. 남양연구소는 현재 포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이 남양연구소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안성으로 R&D 거점을 확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소라 기자 / 박제완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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