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 속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업적 강조하지만 미지근한 추모
22일 덩샤오핑 중국 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기념우표가 발매되고 추모영화가 재개봉했다. 덩 전 주석의 업적과 리더십을 조명하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 추모 열풍은 느끼기 어려웠다. 정부 차원의 기념도 미지근한 분위기이다. 중국 경제가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덩샤오핑의 유산’ 계승을 강조해야 하지만 경제실정론이 부각되는 상황은 달갑지 않은 현 중국 지도부의 고민이 읽힌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좌담회를 열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좌담회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자오러지, 왕후닝, 딩쉐샹, 리시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한정 국가부주석이 참석했다.
시 주석은 좌담회에서 “덩샤오핑의 역사적 위업은 획기적이고 중국과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이라며 “그의 역사적 공적은 영원히 기억되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남긴 가장 큰 사상적 재산은 덩샤오핑 이론”이라며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의 중국화와 현대화를 추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덩 전 주석의 리더십을 부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대체로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현재 세계사적 격변기 중대 기로에 있으며 시진핑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현 지도부가 개혁·개방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학습시보는 이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결정한 지 40년 이상이 지났지만,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고 심각하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시간이 지날수록 이 결정은 더욱 비범하고 지혜로우며 정치적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청년보는 “현재 개혁의 복잡성, 민감성, 난이도는 40여년 전 못지않게 심각하다”며 “덩샤오핑의 풍부한 사상 유산을 계승해 끝까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만 시대가 부여한 사명과 임무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는 최신호에 실린 ‘덩샤오핑 동지가 개척한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사업을 끊임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덩 전 주석을 가장 잘 기념하는 방안은 지난달 폐막한 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내놓은 중대한 결정을 견지해 중국식 현대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중앙TV(CCTV)는 “나는 중국 인민의 아들이며 나의 조국과 인민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덩 전 주석의 발언을 소개하며 추모 포스터를 웨이보에 게재했다.
중국 국가우정국은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 기념 우표’를 선보였다. 덩 전 주석 전기영화 <덩샤오핑의 작은 길>(登小平小道)도 이날 전국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장시, 광둥, 장쑤, 쓰촨성이 공동으로 제작한 이 영화는 덩 전 주석이 1969~1973년 마오쩌둥 주석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나 장시성의 한 트랙터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던 시절을 담은 전기 영화이다. 2021년 개봉했으며 2022년에도 상영된 바 있다.
하지만 포털 바이두의 실시간 검색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기 검색에서 덩 전 주석 탄생 120주년과 관련한 내용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시 주석이 전날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국가대표팀을 칭찬했다는 내용이 이틀째 대부분 언론 최상단과 포털·SNS의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중국 현 지도부와 덩 전 주석이 비교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기사도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회에 걸쳐 시 주석과 덩 전 주석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기사를 내놓고 있다. SCMP는 서방에서는 시 주석이 ‘1인 체제’를 강화해 덩 전 주석의 대표적 유산인 ‘집단지도체제’를 훼손했다는 평가를 내놓지만 “공산당의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을 맞아 전임자들이 세운 관습과 길을 깨는 방식으로 반응한 점은 같다”고 평가했다.
신화통신은 지난달 3중전회 개막을 앞두고 시 주석을 덩 전 주석의 계승자로 묘사한 ‘개혁가 시진핑’이란 기사를 내보냈으나 돌연 삭제한 바 있다. 당시 시 주석을 덩 전 주석과 비교하는 것이 오히려 현재의 경제실정론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지근한 추모 열기와 관련해 “마오쩌둥의 경우 종종 민간신앙의 대상처럼 열풍이 부는 경우도 있고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부각되지만 덩샤오핑의 경우는 선전·상하이 등 개혁·개방 수혜지를 제외하고는 열렬한 추모 대상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덩샤오핑 본인이 개인숭배와 우상화에 반대했던 인물이며, 불평등의 원인이기도 하고, 자유주의자들 입장에서는 톈안먼 항쟁 진압의 장본인이라는 과오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 중국은 여전히 덩샤오핑이 설계한 틀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정치적으로는 일당체제, 경제적으로는 국가자본주의 등 덩샤오핑이 만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이 현 지도부의 기조”라며 설명했다. 현 지도부가 비교 대상이 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덩샤오핑 계승’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덩 전 주석은 1904년 8월 22일 쓰촨성 광안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시기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다가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중국의 최고 지도자에 올라 1978년 중국 공산당의 노선을 개혁·개방으로 변경했다.
덩 전 주석은 ‘부유해질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지라’는 선부론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최고’라는 흑묘백묘론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금기를 깨고 과감한 국가 자본주의를 도입했다. 1997년 2월 세상을 떠났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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