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파티 된 美 민주당 전대…DJ 섭외가 신의 한 수였다
엄숙 관행 깨고 사상 첫 음악 결합
75분간 57개 주·자치령 상징곡 틀어
폭발적 반응...오바마도 “죽여줬어”
“전당대회가 마치 댄스 파티와 같았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0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선 각 주의 대의원들이 대선 후보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롤콜(Roll Call·호명 투표)’ 행사가 있었다. 통상은 이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공식 대선 후보로 추인받는다. 다만 올해는 민주당이 미리 가상 롤콜을 통해 해리스를 후보로 확정했던 터라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섭외한 뉴욕의 DJ(디스크 자키) 한 명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초식으로 전당대회의 분위기를 180도 바꿔놓았다.
◇ 57개 주·자치령 맞춤형 선곡… 75분 계속된 음악
롤콜 시작과 함께 무대에 올라온 건 반짝이는 파란색 정장에 베이지색 모자, 사각 선글라스를 착용한 ‘DJ 캐시디’였다. 캐시디는 현장에 모인 57개 주와 자치령 대의원들을 향해 “내가 지금부터 주에서 주로 마이크를 전국에 돌려 보겠다(pass the mic)”며 “우리의 목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도록 해보자”라고 했다. 각 주 대의원들이 “우리는 대선 후보로 해리스를 지지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할 때마다 그 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 깔렸다. 이번 행사를 총괄한 민주당전국위원회(DNC)가 캐시디에 ‘뮤지컬 마에스트로’란 특명을 부여했는데, 캐시디가 각 주 대의원들과 소통해 가며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음악을 고른 것이다. 음악을 통해 전역에서 모인 대의원들이 하나가 되는 통합 효과도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만 진행된 롤콜에 음악을 입히니 신의 한 수가 됐다. 캐시디는 이날 75분 동안 각 주와 자치령을 상징하는 57개의 음악을 줄지어 틀었다. 해리스가 태어난 캘리포니아 순서 때는 서부 힙합의 전설인 투팍의 ‘캘리포니아 러브(California Love)’, 뉴욕 순서 때는 제이지·알리샤 키스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가 나오는 식이었다. 웨스트버지니아 순서 때는 존 덴버가 부른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Take Me Home, Country Road)’의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앨라배마에서는 린야드 스카이나드가 부른 ‘스위트 홈 앨라배마(Sweet Home Alabama)’를 틀었다. 메릴랜드 순서에 나온 아레스 프랭클린의 ‘리스펙트(Respect)’, 코네티컷 순서에 나온 스티비 원더의 ‘사인드, 실드, 딜리버드(Signed, Sealed, Delivered)’는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별 생각 없이 선곡한 것이라고 한다.
단선적인 걸 넘어 좀 더 심오한 의미를 담기도 했다. 콜로라도 순서에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셉템버(September)’가 나왔는데 이는 이 그룹의 리드 싱어 필립 베일리가 주도(州都)인 덴버 출신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칸소에는 플리트우드 맥의 명곡 ‘돈 스탑(Don’t Stop)’을 틀었는데 이는 주지사 출신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캠페인 때 이 노래를 유세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압권은 이날 조지아 순서 때 흑인 래퍼 릴 존이 깜짝 등장, 본인의 히트곡인 ‘턴 다운 포 왓(Turn Down For What)’을 직접 부른 것이었다. 대의원들도 존의 비트에 맞춰 “해리스를 지지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존은 이른바 ‘피치 스테이트’라 불리는 조지아 애틀랜타가 고향이다.
◇ 오바마 “오늘 밤 죽여줬어”… 공화당과도 대비
사상 처음 롤콜과 음악을 결합한 캐시디의 시도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캐시디에 언론 인터뷰와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은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의 인스타그램으로 달려가 “정말 고맙다”는 응원 댓글을 남겼다. 소셜미디어에선 “누군가 캐시디가 틀은 노래들을 스포티파이 리스트로 만들어 달라”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대 때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롤콜을 할 때는 다른 대의원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정숙을 유지해달라”고 했던 것과 맞물려 180도 달랐던 두 당의 전당대회 분위기가 대비되는 효과도 있었다. 고(故)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딸 메건 매케인은 X(옛 트위터)에서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거대한 축하 파티 같다”며 “공화당엔 미안하지만 DJ 캐시디가 참여한 민주당 행사의 주제, 음악, 파티 분위기가 공화당을 능가했다”고 했다.
이번 롤콜을 통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스타덤에 오른 캐시디는 21일 “준비 과정에 꼬박 한 달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섭외 요청을 받고 혼자서 이 재생 목록을 만들고 싶지 않아 각 주 대표, 대의원들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매우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과정을 거쳤다”며 “음악으로 인해 모든 사람의 감정이 연결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날 캐시디에 이어 마지막 연사로 무대에 오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연히 마주친 그에게 “오늘 밤 죽여줬어(Killed it tonight)”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캐시디는 베니티페어 인터뷰에서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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