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 전기차 안 빼면 1분에 500원"…서울시 조례 예고
'얌체주차' 방지… 화재대책 무관
이중 규제·경쟁력 저하 지적도
서울시가 완충된 전기차를 빼지 않으면 하루 최대 '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전기차 차주들을 압박했다. 90% 이상 충전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금지에 이어 또 다시 전기차에 대한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빗나간 대책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산 전기차와 배터리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시는 화재 대책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시행 시점을 볼 때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22일 자동차·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달 16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서울시가 소유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소에서 충전이 완료됐거나 제한시간이 경과한 뒤 출차하지 않으면 '충전시설 점거 사용료'를 징수한다는 게 골자다.
사용료는 전기차 충전이 종료된 지 15분 이후부터 1분마다 500원 이하, 1일 부과액으로 최대 10만원까지 부과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충전시설의 사유화를 막는 일명 '얌체 주차'를 막기 위한 정책으로, 화재 대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중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완속충전기에 14시간 이상 주차할 경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만약 전기차 충전기를 꽂아놓은 상태에서 급한 일이 생겼을 경우 하루 최대 20만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이항구 자동차기술융합원 원장은 "통상 산업 육성을 위해 중복 규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정책을 편다"며 "이미 전기차 충전 구역에 대한 규제로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 만큼 이 규제를 더 잘 다듬고, 홍보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서울시 입장에서 공동주택이 많다 보니 안전성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사실상 처벌 성격의 벌금 부과여서 전기차주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며 "과도한 규제로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성장을 앞두고 무너져 내릴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행 시기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이 성공하려면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난 1일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되는 와중에 이를 더 부추길 우려가 있어서다.
서울시는 이미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상 충전한 전기차의 출입을 금지하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추진해 비판받았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이미 100% 충전이 불가능하도록 설계가 돼 있는데, 이번 조치 역시 과충전을 화재 원인으로 단정해 버리는 비과학적 기준이 적용됐다는 지적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서울시가 전기차 충전소의 주차와 민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를 취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인천 화재 이후 전기차 포비아가 확대되는 이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반발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문 교수는 "사실 전기차가 충전 케이블에 연결돼 있으면 충전이 계속돼 화재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오해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일정 부분 충전되면 시스템이 자동으로 충전을 차단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화재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해 단락이 발생하는 발열 때문이다. 단순히 충전율이 높다고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제조 불량이나 외부 충격 등에 의해 양극과 음극의 직접 접촉을 막아주는 분리막 등이 훼손될 경우 화재가 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 역시 최근 스마트폰 등 다른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배터리처럼 100% 충전하더라도 충분한 안전 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전기차 배터리를 설계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포비아가 근거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화재 안전성과 현황을 바라보는 등 전기차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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