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교통사고 나면 어쩌나"…'한 번도 경험 못한' 응급대란 온다?
주요 대학병원의 진료 파업 때도 운영되던 응급실이 제 역할을 해내기 어려운 위기를 맞고 있다. 24시간 상주하며 응급진료를 대기해온 전문의들이 체력 고갈을 이유로 사직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닷새간(주말 포함) 이어지는 이번 추석 연휴 때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응급상황이 생길 경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응급진료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다.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은 이달 들어 매주 목요일은 성인 응급환자 진료을 제한한다. 지난 5월 전문의 15명 중 3명이 순차적으로 그만뒀고, 최근 1명이 추가로 사직하면서 11명만 남았다. 주 7일간 12시간씩 교대근무를 유지할 최소 인원(14명)도 안 되는 셈이다. 기존엔 목요일에도 24시간 성인 응급환자를 진료했지만 이제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4시간 동안 성인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다. 지난 1일과 15일엔 성인 응급환자를 아예 받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림대 강남성심병원도 응급실 운영에 난항이 예고된다. 이곳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5명 있었지만 조만간 1명이 그만둘 예정이다. 충원을 위해 여러 차례 채용 공고를 올리고 있지만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공의·전문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진 부족이 '응급실 뺑뺑이' 사태를 촉발하고 있다. 지난 15일 충북에 사는 40대 임신부가 응급실 운영 중단으로 분만할 곳을 찾지 못해 구급차를 타고 헤매다 결국 길에서 출산했다. 진천소방서에 따르면 당시 119구급대는 분만 진통을 호소하는 여성을 이송한 채 청주·천안의 병원 4곳의 수용 가능 여부를 알아봤지만 "병상이 부족하다", "전문의가 없어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그중 청주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은 전공의 이탈과 응급의학과 전문의 공백으로 전날(14일) 오후 2시부터 응급실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이 여성은 결국 신고한지 1시간26분 후 길에서 딸을 낳았다.
이런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대한응급의학회가 긴급 대책을 내놨다. 21일 대한응급의학회는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로 어려움이 가중한 응급의료 분야 현안을 개선하기 위해 학회 차원의 '특별위원회'를 긴급 구성했다고 밝혔다. 특별위원회는 김인병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고, 학회 이사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키로 했다.
이 학회는 전국 어디에서나 급성 심정지 환자가 발생할 경우 바로 119구급대를 수용해 전문 심장소생술, 소생 후 전문 처치를 시행할 수 있는 진료 역량이 있는 병원 명단도 조사해 공개하기로 했다. 또 응급의학과 전문의(교수)들이 체감하는 '시도별 응급의료 현황'을 파악하고, 국회·정부와 함께 응급의료체계 유지 대책에 대해서도 논의하기로 했다. 김인병 이사장은 "정부의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 등 의료 정책 추진 이후 발생한 응급의료 인력 부족의 어려움 속에서도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응급의료 현장을 힘겹게 지켜 왔다"며 "하지만 지역의 대학병원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격무에 지쳐 결국 병가를 내거나 휴직·사직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지키던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교수들이 전국에서 하나둘씩 그만두는 일이 늘면서 의사들 사이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6명이 채 되지 않는 응급실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최근 응급실 축소 운영이 잇따르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일 "응급실 진료 차질은 기관의 개별 사정"이라며 "부분적 진료 제한이 있는 응급실은 5개로 전체의 1.2%다. 다음 달에는 인력이 충원돼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서울도 상황이 안 좋다. 응급실만 열려있을 추석 명절, 진료 대란이 우려된다. 응급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적됐던 의료 문제가 한꺼번에 작용했다"고 말했다. 지방의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B교수는 "병원 응급실마다 6~7명에서 많게는 20명 가까이가 일한다. 사람 많은 데는 운영에 아직 별 지장 없으나 7개월째 교수들만으로 버티던 와중에 6~7명 중 1명만 아파도 와르르 무너지는 셈"이라고 한숨지었다.
응급체계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는 경증환자의 응급의료센터 이용을 막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이용 환자 중 42%는 경증·비응급 환자이고, 응급실을 방문한 코로나19 환자 중 95% 이상이 중등증 이하 환자다. 비중증·응급 환자만 걸러내도 응급실 뺑뺑이를 최소화할 수 있단 얘기다. 이에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경증·비응급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할 경우엔 외래진료 본인부담분을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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