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집값 상승, 대출 증가가 금리 묶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내수부진보다 금융안정 측면의 위험 신호가 더 많다. 지금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동결(연 3.50%)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로 ‘부동산 리스크’를 거듭 강조했다. 집값 상승과 그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민간소비와 투자 등 내수 부진은 금리인하 시점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시간을 갖고 대응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최근의 ‘부동산발 금융불안’은 “당장 막아야 하는 과제”라고 진단했다.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와 정부·여당의 압박에도 통화정책을 당분간 긴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며 우려와 경고의 톤을 높였다. 그는 “부동산이 소득과 비교해 너무 올라 버블(거품)이 꺼지는 걱정뿐 아니라 자원배분 측면에서도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하는 이런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안정의 핵심이 부동산과 가계부채”라며 “한은이 유동성을 늘리거나 이자율을 낮춰 부동산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가와 성장 측면에서 보면, 금리인하 여건이 조성됐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은 특히 물가 둔화 추세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좀 더 커졌다”고 평가했는데, 이는 지난 5월 “확신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이라는 진단과 대비된다.

내수 부진은 ‘목에 걸린 가시’다. 한은은 이날 내놓은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민간소비·설비투자 등 내수 지표를 줄줄이 하향조정했다. 금리를 내려 경기를 진작해야 한다는 정부 논리에 힘을 싣는 지표 변화다. 하지만 ‘고금리 책임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내수 상황이 더딘 것이 사실이나 민간소비의 경우 일시적 소득이 아닌 항상(恒常) 소득의 영향을 받는다”며 “투자 수요는 단기적으로 금리 영향을 받겠지만 소비는 시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금리를 내려도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효과도 제약적이라는 얘기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층 고용이 증가하는 구조적 요인도 내수 부진의 원인으로 그는 지목했다.

한은의 금리인하 신호는 조금 더 분명해진 측면이 있다. 이날 금통위에서는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향후 3개월 이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포워드가이던스)을 냈다. 이런 의견은 지난 5월 회의 때 2명에 그쳤지만 4명으로 늘며 다수가 됐다. 종전 통화정책 의결문에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한다는 문구에서 이번엔 ‘충분히’란 표현을 삭제한 것도 금리인하에 한발 더 가사왔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다음 금통위 회의가 예정된 10월에 금리를 내린다는 뜻을 분명히 한 건 아니다. 이창용 총재는 “향후 3개월 내에는 10월, 11월이 다 포함돼 있다. 앞으로 나올 지표들을 보고 10월에 결정할 수도 있고 11월에 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시기와 폭은 집값과 가계부채가 얼마나 빨리 안정되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한은은 이날 통화정책방향에서 ‘정부의 부동산 공급 및 수요(대출규제) 정책의 효과를 면밀히 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현재로선 ‘10월 인하’가 유력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두달 안에 뚜렷한 안정세를 찾지 못하면 한은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이날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주장한 소수의견이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10월 소수의견→11월 금리인하’ 에상도 나온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