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해 보이는 걸 상상하는 것’…“사회 변화의 힘!”
[서울&]
‘장애인이 시설 나와 자립해 살아가기’투쟁하며 ‘낯선 개념’ 알려온 10년 활동‘바위 같은 사회 통념’ 움직임 경험하고“모든 약자 연대” 새 가능성도 꿈꾸게 돼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우리나라 최초 장애인 탈시설 운동 시민단체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의 조아라(33) 활동가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다. 이 문구는 2015년 11월 조 활동가가 탈시설 운동에 참여한 장애인 20여 명과 함께 만든 ‘탈시설 선언문’의 마지막 ‘제15조’ 내용이다. 지난 16일 대학로에 있는 발바닥행동 사무처에서 만난 조 활동가는 탈시설 선언문을 만들던 당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발바닥행동’은 2005년에 만들어진 단체다. 당시로서는 정말 새롭고 낯선 개념인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표방했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의 개인별 주택에서 필요한 자립 지원 서비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한다.
공식 창립기념일은 7월1일이지만, 정확한 창립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탈시설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장애인 이동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당시 현실에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투지를 다지는 술자리가 늘던 때였다. 이미 낮엔 장애인 인권 활동, 저녁엔 술자리가 병행되던 숱한 날 중 7월1일을 시작일로 정했다. 그날은 “이 운동은 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는 다짐도 수없이 한 날이다.
“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고 했던 원년 활동가들의 마음을 조아라 활동가가 안 것은 2014년 3월 첫 출근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해 2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조 활동가는 선배의 권유로 발바닥행동 면접을 봤다. 사실 조 활동가는 면접을 보기 전까지는 ‘장애인 복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활동가가 되고 얼마 뒤 인권 침해 조사차 방문한 장애인 거주 시설의 모습에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교도소나 구치소처럼 복도 한편으로 방이 쭉 있었어요. 그런데 그 복도를 다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 나이 또래의 장애인을 비롯해 중증 장애인이 많았는데, 그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 안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런 장애인의 모습이 과도한 약물 투여나 육체적 폭력에 의해 무기력한 상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에게도 “탈시설 운동은 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 됐다.
1년 뒤 ‘탈시설 선언문’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탈시설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만든 권리선언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 선언문을 당사자들의 경험을 살려서 만들기 위해 20여 명의 장애인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참석한 장애인 중 어떤 이는 띄엄띄엄한 목소리로, 어떤 이는 휴대폰 화면에 문장 하나를 적어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다. 조 활동가는 그 내용을 일일이 다시 적은 뒤 전체가 보도록 빔프로젝터로 크게 띄웠다. ‘제1조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이다’에서 시작해 ‘제15조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까지 내용을 합의하고 적어나가는 데 무려 5시간 이상이 걸렸다. 조 활동가는 그 한 문장 한 문장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운동”을 하게 됐지만, 운동의 갈 길은 멀었다. 발바닥행동이 지향하는 ‘수용시설 밖에서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장애인’은 당시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14년 장애인 인권 침해 조사 때 일어났다. 조사를 위해 시설에 들어서려 하자, 장애인 부모들이 활동가들을 막아섰던 것이다. 비리와 인권 침해혐의로 고발된 시설 관계자들이 부모들에게 연락하고 선동한 결과였지만, “당시 부모님들은 시설이 없어질까봐,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갈 곳이 없을까봐 막으신 것이다”.조 활동가를 비롯해 현장에 나간 활동가들이 “자녀분들이 좀 더 인권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주택이 있고 개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부모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조아라 활동가가 그렇게 탈시설 운동에 대한 몰이해에 맞서 싸워온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그사이 탈시설 운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적지 않게 변했다. 무엇보다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정책용어로도 사용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에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탈시설 로드맵)이 발표되기도 했다. 탈시설 정책을 20년 동안 단계별로 시행해서 2041년에 완성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탈시설 운동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조 활동가는 지난해 10월 열린 ‘탈시설 사회를 바라는 가족 증언대회’를 준비하며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40살이 넘은 발달장애인 딸을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도록 지원한 70대 어머니였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바로 2014년 시설 내 인권 조사를 강력하게 막던 부모 중 한 분이었다. “이걸 진작 알았다면 더 일찍 나오게 할걸” 하시는 어머니와 조 활동가는 서로 한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탈시설 운동은 장애인도 그 개인으로서 살고, 그 장애인의 가족도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을 지향하는 운동이에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셨던 어머니가 결국은 그 길을 선택하신 거잖아요. 그 상황들을 직접 보고 그 말씀을 직접 들으니, 가슴이 너무 벅차올랐어요.”
조아라 활동가는 지난 10년간 이런 변화를 경험하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을 “가능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게 됐다.
“발바닥행동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탈시설 운동을 얘기하면 ‘그게 가능하냐’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해요. 이동권 투쟁이 막 벌어지는 상황이었고, 장애인 교육은 말할 것도 없었어요. 그래도 장애인이 탈시설을 해서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육이 뭘까를 계속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됐죠.”
그렇게 가능성을 꿈꾸는 삶은 사회뿐만 아니라 조아라 활동가 자신도 변화시킨다.“저도 비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장애인 친구가 한 명도 없었고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했지만 장애인 복지에는 너무 무지했어요.
그런데 발바닥행동 활동가로 살면서 이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진짜 알게 된 거예요.”
조 활동가는 이제 건물 하나를 볼 때도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본다. ‘저 건물에서 과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다.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오자, 어느새 ‘사회를 살펴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
더욱이 조아라 활동가는 자신의 관심이 장애인을 넘어 사회의 다른 약자에게로 넓어졌다는 것도 느끼게 됐다.
“신기한 것은 장애인의 삶을 알게 되니까,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힘이 없다고 인식되는 사람들도 장애인과 비슷한 삶을 살고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장애인이 그동안 노동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니 그냥 시설에 가는 것이 다 통용됐는데요. 장애인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노쇠해진 노인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거예요.”
조 활동가는 이에 따라 “장애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노인요양원·노인 요양병원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건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게 됐다. 조 활동가는 더 나아가 “장애인을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아동·청소년 등 자기 결정권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장애인의 탈시설뿐만 아니라 ‘모두의 탈시설’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왔구나 하고 느낀다”고 한다.
발바닥행동이 지난 7월19일에 진행한 ‘모두를 위한 탈시설 토크콘서트’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장애인단체뿐만 아니라 ‘청소년주거권 네트워크 온’ ‘(재)돌봄과 미래’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등 대안적 사회를 고민하는 여러 모임이 참여했다.
참여한 단체는 각자의 처지를 떠나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는 정신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공유 정신을 바탕으로 다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그에 힘입어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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