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은 아들 대신 받은 졸업장…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 명예 졸업식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강당에서 22일 오전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는 단상에 올라가기 전 종이가방에서 비단 보자기로 싼 지한씨의 영정사진을 꺼내 품에 안았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식순에 따라 박수 소리가 울리자 이씨가 영정을 든 채 오른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동국대는 이날 학위수여식에서 10·29 이태원 참사로 숨진 지한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와 어머니 조미은씨가 참석했다.
지한씨 가족은 ‘명예졸업장을 받으러 참석해달라’는 학교 측 통보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이씨는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날인데 우리가 가서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망설였다”며 “유가족이 된다는 건 사회에서 튕겨나가 죄인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지한씨 누나의 꿈에 지한씨가 나왔다고 했다. 지한씨 누나는 꿈속에서 지한씨가 “학교에 간다”며 환히 웃어 보였다고 가족들에게 전했다. 가족들은 생전 그의 미소를 떠올리며 졸업식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한씨는 학교를 좋아했다. 진로를 배우로 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한 끝에 합격한 학교였다. 6년 전 출력한 대학 합격증이 아직 집 냉장고에 붙어있다. 이씨는 배우가 되겠다는 지한씨에게 “아무나 하는 쉬운 일이 아니다. 너 자신을 버릴 만큼 독해야 하는데 너는 여려서 상처를 많이 받을 거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지한씨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굽히지 않았고, 대학 입학과 연예기획사 합격을 모두 해냈다.
그만큼 지한씨는 연기에 진심이었다. 이씨는 2022년 8월 어느 날 지한씨가 “아빠, 후배들을 가르치다 보니 나도 많이 배우는 것 같아. 도움이 정말 많이 돼”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씨는 “그때 ‘아들이 많이 컸구나, 이제 안심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랬었는데 지한이가 없다는 게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고 꿈만 같다”고 말했다.
지난 3일은 지한씨 생일이었다. 가족들은 그날 세끼 식사를 모두 굶었다. 지한씨가 떠난 뒤에도 변함 없이 돌아오는 기념일과 명절은 적막과 긴장으로 가득한 날이 돼 버렸다. 이씨는 “누군가 슬퍼하면 다른 가족이 더 슬퍼하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보다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며 “아직도 지한이가 몰던 차에서 지한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혼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곤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회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명단을 정부에 제출했다. 지난달 말부터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이씨는 “특조위를 기다리다 지쳤다”며 “아직도 참사의 책임을 지는 사람 하나 없는데 정부도 국회도 손을 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오늘 기쁜 날인데 우리 때문에 미안하고, 지한이가 이 자리에 없지만 슬퍼하지 말고 진심으로 축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한씨 가족은 졸업장을 챙겨 지한씨가 봉안된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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