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과 부동산 가격 급등 사이···이창용 총재 “저글링 중”
한국은행이 2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주요 배경에는 더딘 내수 회복세가 있다. 수출은 호조세를 보이지만 소비와 투자를 비롯한 내수가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내수 회복을 위한 유동성 공급보다는 부동산 시장 불안과 가계부채 관리에 방점을 찍고 금리 동결을 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처럼 상충하는 정책 목표 사이에서 “저글링(두 개 이상의 물체를 번갈아 던지고 잡는 묘기) 중”이라며 고민을 드러냈다.
반도체 수출 ‘온기’, 국내 투자로 안 이어져
한은은 1분기 기록한 깜짝 성장률(1.3%)에 대해 “일시적 요인이 컸다”고 했다. 날씨, 스마트폰 조기 출시 등 일시적 요인을 제외하면 연간 성장률이 2.4%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가장 하락폭이 큰 부분은 설비투자였다. 기존 예상보다 3.3%포인트 낮춰 잡았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상반기 중 반도체 경기가 좋았으나 과거와 달리 반도체 기업들이 보수적 투자 행태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기업의 수출 ‘온기’가 국내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은은 가계 소득이 개선되는 속도도 예상보다 늦다고 판단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지난 5월 1.8%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건설경기 부진 등의 영향으로 취업자수 증가 규모도 당초 예상(26만명)보다 낮은 20만명으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5%로 제시했다. 5월(2.6%)에 비해 0.1%포인트 낮아졌다. 지난해 하반기 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 영항이 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수가 더디고 (수출 경기와) 차별화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기가 나빠진다기보다, 자영업자와 부채가 많은 취약계층이 어렵고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정확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는 “수출에서 반도체 부분을 빼면 실제로 경제 성장의 모습이 좋지는 않다”면서 “이제 정부가 어떤 식으로 내수 회복의 계기를 가져갈 것인가가 정말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금리 동결,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급등 탓
금통위원 6명 중 4명, 3개월 뒤 인하 전망
내수가 부진하고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지만 당장 금리를 내리기는 힘든 상황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13회 연속 연 3.5%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가계부채 급증과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을 이유로 꼽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22주 연속(8월 셋째주 기준) 오름세를 보였다.
일단 금통위는 ‘금융 안정’을 택했다. 이 총재는 “물가수준만 봤을 땐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면서도 “현 상태에서 금리를 동결한 이유는 내수 부진은 시간을 갖고 대응할 수 있는 반면,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부동산·가계부채 위험) 시그널을 지금 막지 않으면 좀 더 위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상충관계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이 이자율을 낮춘다든지 유동성을 과잉 공급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는 ‘영끌족’을 향해서도 “정부의 공급 대책으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건 제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전날 공개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7월 의사록에서 보듯 미국이 9월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도 하반기 금리를 내릴 기대감은 커졌다. 3개월 뒤 금리 인하를 전망하는 금통위원이 지난달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이 총재는 “(인하를 전망한) 4명은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이고 부동산 관련 정책들도 시행될 예정인 만큼,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채 거시경제 및 금융안정 상황을 지켜보면서 금리 결정을 하자는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증권가는 대체로 10월 인하를 예상했지만 11월을 내다보는 의견도 나왔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실상 가계부채가 정책결정의 핵심 변수가 됐다”며 “연내 인하는 확실하지만 10월 인하를 장담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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