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구역 안 따지는 이복현… 상법 이슈 ‘이사 충실의무 확대’ 재점화
21일 간담회선 그간 논의 내용 정리하는 수준
정작 상법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뒷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재차 이슈화하고 나섰다. 현재 회사에 한정된 이사의 충실 대상을 일반 주주까지 넓혀야 한다는 게 논의의 핵심인데, 이는 한동안 금감원의 중점 사안에서 물러나 있던 문제다. 금감원이 다시 여기에 집중하는 건 국회에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만큼 발을 맞추겠다는 취지다. 다만 최근 간담회는 새로운 쟁점이 나왔다기보단 그간의 논쟁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2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 원장은 오는 28일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 간담회’를 개최해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자본시장연구원, 삼일PWC거버넌스센터 등을 만난다. 전날 같은 주제로 5명의 상법 분야 학계 전문가와 얘기를 나눈 데에 이어 일주일 만에 업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두 자리 모두 비공개다. 다음 달 중순엔 모든 이해관계자를 모아 공개토론회를 연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연장선에서 이 원장이 공론화한 의제다. 상법 제382조의 3인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에서 이사가 충실의무를 수행해야 할 대상에 ‘주주’를 추가해 이사회에 일반주주 보호 의무를 지우자는 게 그 골자다. 올해 2월 처음으로 충실의무 공을 띄운 이 원장은 6월엔 긴급 브리핑을 열기도 했다.
재계를 중심으로 세계 주요국엔 이사의 충실의무가 없어 과한 규제라는 반발이 나오면서 이 원장이 총대를 메고 여기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당시 이 원장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주요 선진국에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건강한 공론화를 위해선 사실에 대해서는 합의하고 얘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일부 논객이 해외엔 없다는 식으로 와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브리핑 이후 금감원에선 충실의무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시장에서 “요즘 금감원이 왜 이렇게 조용하냐”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이달 학계와 업계 간담회를 시작으로 금감원은 두 달 만에 충실의무를 재점화한 건데 이를 두고 금감원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도 논쟁이 시작됐는데 처음 이슈를 제기한 만큼 (현시점에서) 의견 수렴을 통해 협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야당이 상법 개정을 적극 추진 중이다. 이달 12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개미투자자보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해 충실의무를 확대해 전체 주주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일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관련 내용을 담은 ‘상장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금감원의 목적이 ‘이슈 재점화’인 만큼 간담회에서 새로운 쟁점을 논의하진 않았다. 전날 학계 간담회에서 금감원은 “일부 판례에서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가 지켜지지 않아 주주 충실의무를 법에 명시하는 게 유의미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전날 간담회에서는 충실의무 대상이 넓어지면 온갖 소송이 남발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해 이사의 책임을 가볍게 하는 방안에 관한 얘기도 나왔는데, 상반기에 언급된 배임죄 폐지 그대로였다. 다음 주로 예정된 업계 간담회에서도 현 논의와 크게 다른 얘기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충실의무 공론화에 적극적인 금감원과 달리 정작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뒷짐을 진 모양새다. 상법은 금융당국이 아닌 법무부 담당이다. 법무부 영역을 금감원이 건드리고 있다는 지적에 이 원장은 “투자자와 자본시장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 자본시장 감독기관인 금감원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법무부는 올해 초 상법 개정으로 기업 경영 활동에 제약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가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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