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증후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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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엔마르크는 스톡홀름의 은행에서 일했다.
강도 얀에리크 올손은 엔마르크와 은행 직원 세명을 은행 금고에 가두었다.
엔마르크와 동료는 살아남기 위해 강도의 비위를 맞췄다.
엔마르크가 경찰을 불신한 일을, 마치 엔마르크가 강도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처럼 호사가들은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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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크리스틴 엔마르크 (1950~)
크리스틴 엔마르크는 스톡홀름의 은행에서 일했다. 1973년 8월23일, 총 든 은행 강도가 들이닥쳤다. 강도는 어설펐다. 제때 탈출하지 못하고 경찰에 포위됐다. 강도 얀에리크 올손은 엔마르크와 은행 직원 세명을 은행 금고에 가두었다. 인질극의 시작.
경찰과 협상하여 올손은 감옥에 있던 지인 클라르크 올로프손을 은행에 데려왔다. 올손과 올로프손은 엔마르크와 세 동료를 감시. 엔마르크와 동료는 살아남기 위해 강도의 비위를 맞췄다. 한편 경찰의 초기 대응은 미숙했다. 인질은 정부와 경찰을 믿지 못했다. 경찰의 어설픈 구출 작전 때문에 인질이 경찰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을까 엔마르크는 걱정했다.
정부와 경찰도 걱정이 많았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 여럿이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강도를 궁지에 몰면 인질을 쏘고 자결할 것이라고 염려. 그러나 경찰의 자문의사 닐스 베예로트의 생각은 달랐다. 강도 올손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파악, 인질을 살해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강도가 탈출하도록 풀어줬다면, 정부는 비슷한 범죄에 연달아 직면했을 것.” 하필 총선거도 코앞이었다.
닷새 뒤, 경찰은 은행에 최루가스를 뿌리고 진입. 재판 끝에 강도 올손은 10년형을 받았다. 올로프손은 나중에 올손의 공범이라는 혐의를 벗었다. 인질은 무사히 구조되었다.
그런데 구조가 끝난 뒤 엔마르크는 수난을 겪는다. 정신과 의사 베예로트는 인질이 강도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했다고 주장.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엔마르크가 경찰을 불신한 일을, 마치 엔마르크가 강도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처럼 호사가들은 받아들였다. 엔마르크는 강도에게 매력을 느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신문이 뭐라고 쓰든 상관없어요. 나는 내 진실을 알고 있어요.” 엔마르크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이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심리가 정말 있을까? 경찰과 정부가 자기네 책임을 피하기 위해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 뒤로 숨었다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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