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상대 손배소 잇따라 승소

정대연·유선희 기자 2024. 8. 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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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다가 항소심에서 승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소멸시효 기준일을 2018년 이후로 봐야한다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2부(재판장 지상목)는 22일 강제동원 피해자 고 정모씨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총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패소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정씨는 1940~1942년 일본 이와테현의 제철소에 강제동원돼 피해를 봤다고 생전에 진술했다. 유족들은 이를 바탕으로 2019년 4월 2억여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같은 법원 민사항소7-1부(재판장 김연화)도 이날 강제동원 피해자 고 민모씨 유족 5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뒤집고 일본제철이 유족들에게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민씨는 1942년 2월 일본제철이 운영하는 가마이시 제철소에 강제동원돼 5개월가량 일했다. 민씨 유족은 2019년 4월 일본제철을 상대로 약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강제동원은 채무 소멸시효(10년)가 지났지만,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던 점이 인정돼 이 사유가 해소된 시점부터 3년까지 청구권이 인정된다. 하지만 하급심마다 소멸시효 기산점을 두고 판단이 엇갈렸다. 일부 재판부는 대법원이 처음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파기환송)한 2012년 5월24일을 기준으로 삼았고, 일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확정 판결이 나온 2018년 10월30일을 기준으로 채택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소멸시효 기준일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2018년 10월30일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기준이 통일됐다.

지난 6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이 일본 건설업체 쿠마가이구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1심 결과를 뒤집었다. 지난달 강제동원 피해자 이모씨와 최모씨 유족 10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선 일본제철이 총 1억2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작년 연말과 올해 초에 걸쳐 대법원에서 소멸시효를 2018년 이후로 봐야 한다고 확정해 다시 판결이 난 것”이라며 “일본제철을 비롯한 강제동원 기업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죄하고 배상하도록 계속 요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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