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시 설명 법제화하고 조정 돕는 '환자대변인' 둔다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4. 8.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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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의개특위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 주관 공개토론회
분쟁조정制 도입에도 소송의존도 큰 의료사고…'사전 소통' 초점
감정 전문성 높이고 불복절차 마련…'국민 옴부즈만'으로 투명성↑
의료기관 고액배상 부담 덜 수 있게 보험·공제 확충…형사특례도 도입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가 22일 주관한 공개토론회에서 백경희 의료사고안전망전문위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우리는 목숨을 걸고 수술방에 들어간다. 수술방에서 환자가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 높은 경우도 많다."(필수의료과 의사)

"의료사고 발생 후 의료진의 진정 어린 소통만 있어도 형사소송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환자·소비자단체 관계자)

소위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과를 기피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의료사고 시 의료진의 '사법리스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필수의료 혁신전략' 발표 당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도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4대 우선과제에 포함시켜 논의해 왔다.

정부는 의료분쟁조정제도를 도입한 지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의료사고가 나면 여전히 소송에 의존하는 실태를 감안해 환자와 의료진 간 관련 소통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환자 측이 의료사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 가급적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환자 대변인'(가칭)을 도입하기로 했다.

더불어 필수의료과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 형사특례를 적용하는 동시에 배상을 위한 책임보험 공제·보험료 지원도 추진한다.

의료사고 '초기 소통' 강화로 소송 막는다…'환자 대변인' 신설

의정갈등 장기화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인한 응급실 과부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류영주 기자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은 22일 의개특위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가 주관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방향' 공개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의료사고 초기 환자-의료진 간 활발한 소통을 담보하고 상호 신뢰를 높일 수 있도록 '의료사고 설명'을 법제화하기로 했다.

사고 발생 시 법적 분쟁을 우려해 의료기관이 관련 설명과 유감 표시에 소극적인 점, 이로 인해 환자 측의 감정이 악화돼 고소·고발 수순으로 가는 소송전을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의료법상 사전에 수술·처치 등 치료계획과 위험성 등을 설명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젠 사후에도 경상해는 담당 의료진(의사·간호사)이 경위를 설명하도록 하고, 중상해의 경우 '의료사고 예방위원회' 위원장 또는 진료과별 안전관리자가 △사전 수술계획과 실제 치료내용 △환자 상태 및 문제상황·결과 등을 상세히 전달하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설명과정에서 이뤄지는 유감이나 사과 표명 등 향후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증거의 채택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의료사고 소송 증가와 중증·응급진료 기피 등에 따라 2012년부터 도입·시행된 의료분쟁조정제도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그간 환자는 감정이 의료인 입장에 치우쳐 있고 배상액이 낮다며 불만을 가져왔고, 의료계는 감정 시 의학적 근거 미흡, 과실 인정 여부와 무관한 조정 유도 등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당국은 먼저 의학적·법적 지식이 부족한 환자를 실질적으로 돕는 '환자 대변인' 신설을 추진한다.

의료개혁추진단이 예시로 든 모델을 보면, 환자 측은 사망이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영구장애 발생 등 중상해 발생 사건에 한해 환자 대변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 환자 대변인은 과실 및 인과성을 판단할 핵심 쟁점을 검토·제시하는 조정신청서, 주요쟁점 의견서 등의 작성을 지원한다.

또한 환자의 필요에 따라, 감정 결과를 토대로 조정 심리를 준비하는 한편, 합리적 배상 범위·기준 제시 등도 추가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조정 투명성 높일 '국민 옴부즈만' 도입…의료기관 배상부담 완화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 제공

현행 의료사고 '컨퍼런스 감정 체계'(상임위원 1명·의료인 1명·법조인 1명·환자 및 소비자 2명 등)도 다듬는다.

비의료인 감정위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복수·교차 감정을 위한 의료인 감정위원을 추가한다. 위원 풀을 300명에서 1천 명 이상으로 확충하고, 전문 감정교육 및 인증제를 통해 감정 전문성을 한층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감정 불복절차를 새롭게 마련하고, 감정부와 조정부의 회의가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등을 검토할 수 있는 '국민 옴부즈만'(가칭)도 도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의료사고와 관련해 신속하고 충분한 배상을 보장하고 의료기관의 고액배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보험료 지원, 보험·공제도 확충한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 제공


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평균 의료사고 배상액 규모는 변호사 비용 등을 제외하고 약 3억 7천만 원에 달한다. 그간 대형병원이 배상에 치른 최대 액수는 30억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의료사고공제조합은 300병상 미만 의료기관으로 가입을 제한하고 있어 고위험 중증·필수 진료를 주로 담당하는 300병상 이상 병원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이에 당국은 필수진료과목 의료진을 대상으로 배상 책임보험·공제 보험료 국가 지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적정 보험료율과 배상 한도·범위, 특약, 지원방식 등 '의료사고 책임·종합보험 표준 약관'도 마련한다.

불가항력 분만사고의 국가보상금 한도를 현실화하고, 정부가 개입하는 보상범위 확대도 추진할 예정이다.

의료사고 수사 절차 합리화…의료인 형사처리특례 적용

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의 강준 의료개혁총괄과장(좌측)과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우측). 복지부 제공

고도의 의료지식을 요하는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해, 분쟁 조정 등과 연계한 수사절차도 합리화한다. 

당사자의 동의 아래 의료분쟁 감정·조정 결과 등을 공유함으로써 불필요한 대면 소환·조사는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기소 전에 의료전문가가 참여한 형사조정을 통해 양형 참작 등도 분쟁 해결에 활용한다.

앞서 정부가 입법 추진을 공언한 의료사고처리특례도 법제화한다. 수술 부위·투약 오류 등 중대과실 8가지 등 예외 사유 외엔 '책임보험 가입'을 전제로 한 조건부 반의사불벌, 종합보험 가입 시 공소제기 불가 특례 등을 적용한다.

다만 특례가 해당되는 의료행위 범위에 대해선, 필요성이 낮은 일부행위 외 폭넓게 적용하는 '네거티브 방식'과 응급·분만·중증 등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중심으로 '핀셋 시행'하는 '포지티브 방식' 등 아직 이견이 팽팽한 상황이다. 

당국은 의개특위 논의를 기반으로 세부사항을 협의·조정할 방침이다.

노연홍 의개특위 위원장은 "그동안 전문위에서 치열한 논의를 진행한 결과, 위원 모두는 현재의 소송중심 해결 관행을 끊고 환자와 의료진 간 불신·반목의 구조를 화해와 치유의 구조로 변화시키는 것이 의료사고 안전망의 핵심이란 데 공감대를 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 안전망의 성공적인 구축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소모적인 소송을 줄이는 동시에 환자에겐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의료진에게는 최선을 다한 진료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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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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