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동생 된 ‘이웃’…“외로울 시간 없어”
[서울&] [자치소식]
신림종합사회복지관 안에 7월 만들어내 집처럼 편안하되 좁지 않은 사랑방함께 텔레비전 보고 이야기꽃도 피워“공간 욕구 해결, 지속적 관계 지원할 것”
“형님, 동생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요. 잘 지내는지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이웃이있어 정말 좋아요.”(장근준씨)
“70대 이상이나 오지, 나 같은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오길 잘했다 싶어요. 이웃사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윤영대씨)
관악구 난향동에 사는 장근준(64)씨와 윤영대(55)씨는 바로 옆집에 산다. 하지만 그동안 서로 인사하거나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저 오다가다 가끔 마주치는, ‘얼굴만 아는 사람’쯤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 7월부터 각별한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이 ‘이웃사촌’이 된 것은 난향동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 ‘신림낙낙’이 생기고부터다. 신림낙낙에서 만난 두 사람은 16일 “신림낙낙에 다니면서 서로 인사하고 얘기도 나누면서 친해졌다”며 “한 명이라도 오지 않는 날에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전화로 안부 확인을 한다”고 했다.
관악구는 2022년부터 ‘씽글벙글 사랑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1인가구 주민이 이웃과 만나 소통하며 ‘이웃사촌’을 만들 수 있는 내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다. 2022년 7월 신림동 성민종합사회복지관 2층에 씽글벙글 사랑방 1호점 ‘들락’을 만들었다. 쉼 공간과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필요에 따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두 공간에는 소파와 탁자, 컴퓨터와 도서를 갖춰 휴식, 정보검색, 독서를 할 수 있다. 근육 통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건강테이핑 강좌도 연다. 남은 물품을 나누는 친환경 나눔 부스 그린스탬프를 통해 이웃 간 정을 나눈다.
2023년 8월에는 봉천동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봉천종합사회복지관 1층에 2호점 ‘봉다방’을 만들었다. 휴게실과 프로그램실이 있고, 무인카페도 운영한다. 스마트폰 촬영, 뜨게질 소모임을 운영하고 1인가구 맞춤형 여러 상담도 한다.
올해 7월에는 세 번째 씽글벙글 사랑방 ‘신림낙낙’을 만들었다. 신림종합사회복지관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만든 복합 공간이다. 소모임과 교류 활동을 할 수 있는 공유 거실, 혼자 쉴 수 있는 1인 쉼터, 스터디룸, 정보 창구 등을 갖췄다. 좁은 집에서 혼자 사는 1인가구 주민이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 내 집처럼 편하게 텔레비전 드라마도 보고, 이웃과 소통하며 친밀한 관계도 형성해 그야말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씨가 주머니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세면대 물마개를 꺼내 보였다. “동생이 부탁해서 오후에 사러 가야 해요.” 집 세면대 물마개가 고장 난 윤씨가 똑같은 것을 사달라고 장씨에게 부탁한 것이다. 윤씨가 부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2년 마비 증세를 겪은 이후부터 몸 왼쪽 부분을 잘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멀리 시장까지 물마개를 사러 간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장씨는 두말없이, 오후에 물마개를 사러 갈 참이다.
“동네에서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게 좋죠. 무엇보다 제 자신이 집에만 있지 않고 활동적으로 바뀐 게 좋습니다.” 윤씨는 그동안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신림낙낙이 생긴 뒤로 자주 온다. 윤씨는 “혼자 살면 무척 외로운데,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어 좋다”며 “신림낙낙이 가교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윤씨는 “이곳에 나오면서 성격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혼자 살면 제때 밥 차려 먹는 게 가장 힘들죠. 제일 큰 문제가 반찬인데, 이곳에 와서 함께 식사하면서 반찬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요.”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근처에 사는 장씨는 길에서 우연히 복지관 직원을 만나 신림낙낙에 오게 됐다.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 돼 몹시 불편했는데, 이곳에서 마음대로 컴퓨터를 하고 휴대폰 영상을 볼 수 있어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몸이 아플때 더 외롭죠. 밥 먹는 것도 걱정되고. 신림낙낙에 오면서 혼자 답답하게 있는 일이 드물어졌어요.” 장씨는 “1인가구 주민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동아리에도 참여하고 텃밭 가꾸기도 한다”며 “시간도 잘 가고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정영택(65)씨도 신림낙낙에 자주 와서 장씨, 윤씨와 가깝게 지낸다. “사업을 그만둔 뒤 5년 가까이 법적 문제에 얽매이다보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어요. 사회 적응도 쉽지 않아 일상생활도 어려웠습니다.” 정씨는 지난해부터 신림종합사회복지관에 다니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아는 사람이 없으면 방에 갇혀서만 생활하게 되잖아요. 폐쇄 공간에서 컴퓨터 붙잡고 하는 정도지,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없었어요. 자연히 건강도 나빠지죠.”
하지만 주민센터에서 상담받은 뒤 정씨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정씨는 “신림낙낙에서 이웃을 만나 좋고, 복지관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니 건강도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고 했다. 정씨는 다음주부터 탁구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할 생각인데, 최대한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관악구 전체 인구는 48만1천 명, 전체 가구 수는 28만4천 가구다. 이 중 1인가구는 17만5천 가구로 전체 가구의 61%를 차지한다. 서울시 자치구 중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다. 관악구 1인가구는 공간 제약이 많은 원룸 거주 비율이 높은 게 특징이다. 관악구는 이런 특성을 고려해 ‘안녕 프로젝트’ 등 1인가구 지원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김진연 관악구 1인가구지원팀장은 “1인 가구 주민은 대부분 집이 좁아 거실이 없는 경우에는 답답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며 “씽글벙글 사랑방을 통해 1인가구의 공간에 대한 기본 욕구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 맺기를 지원해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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