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영정사진 앞 졸업장... “네가 직접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류석우 기자 2024. 8. 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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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가 2년 만에 받은 졸업장
동국대, 학위수여식서 “이태원 사고” 표현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학교 안엔 한껏 꾸미고 미소를 짓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가족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었다. 어둑어둑한 하늘 위로 학사모가 날아다녔다. 2024년 8월2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 본관 3층 강당에선 2024년 가을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졸업생과 가족들 수백 명이 앉아 있는 사이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의 의자 뒤엔 ‘명예졸업자 가족’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명예졸업장 수여 전, 공로상 수여가 먼저 진행됐다. 가족들에게 축하 꽃다발을 받는 졸업생들을 보는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와 아버지 이종철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가족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고인을 대신해 명예 졸업장을 받기 전 고인의 영정을 안고, 서로 손잡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어렵게 입학한 동국대, 어렵게 받은 졸업장

지한씨는 2018년 동국대에 입학했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을 계기로 아이돌 준비를 시작했다. 스무살 때 엠넷(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2017)에 출연했지만 초반에 탈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기획사로부터 사기도 당하며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지한씨가 아이돌이 아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시기였다.

뒤늦게 학원도 직접 알아보고 다니면서 어렵게 입학했다. 어렵게 들어간 만큼 추억도 많았다. “학교를 참 좋아했었어요. 신입생 땐 무대 설치를 하느라 집에 못 들어온 적도 많았는데, 어느 날은 ‘엄마, 나 이제 집이라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힘들어한 적도 없고 늘 신기하고 재밌다고 자랑하듯 말했었어요.” 학위수여식을 마친 뒤 강당 밖에서 한겨레21과 만난 조씨가 말했다. 지한씨의 커다란 사진을 두 손에 들고 학교를 바라보던 조씨가 말을 이었다. “학교도 좋아했고 선배도 좋아했고, 후배들도 지한이를 많이 좋아했어요.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동료 선후배들도 아꼈거든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대학생이었던 희생자들이 하나둘씩 모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지한씨가 다니던 동국대에선 아무 소식이 없었다. 조씨가 먼저 연락해 지한씨에게 졸업장을 줄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어렵다” 였다. “처음엔 학칙을 개정해야 한다느니, 뭐를 바꿔야 한다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교육부에 전화를 했는데 교육부에선 그럴리 없다고, 학교에 다시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다시 학교에 전화를 했는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진짜 절망했어요.” 한참을 울면서 도대체 졸업장이 뭐냐고,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후에 졸업장 수여가 결정됐다. 그렇게 참사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가족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고인을 대신해 명예 졸업장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누나 이가영씨, 어머니 조미은씨, 아버지 이종철씨.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어렵게 받게 된 졸업장인데, 학위수여식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공로상을 받은 졸업생들이 수상소감을 하는 것을 보며, 조씨는 학교 쪽에 10초만 발언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단에 올라와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사진을 찍고 내려간 이들과 달리 지한씨의 졸업장 수여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사회자는 명예졸업장 수여 식순을 소개하며 ‘이태원 사고’라는 표현을 썼다. 이태원 ‘사고’는 참사 직후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했던 표현이다.

졸업장을 받고 자리에 돌아온 조씨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했다. 이들 주변에선 한껏 꾸민 다른 졸업생들이 가족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었다. 조씨와 가족들은 학위수여식이 끝나기 전 먼저 강당을 빠져나왔다.

동국대 졸업생들에게 하고 싶었던 한 가지 말

조씨에게 명예졸업장을 받고 하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그냥 고맙다고, 지한이를 기억해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지한이가 동국대 입학했을 때 동네잔치를 열어주고 싶을 만큼 기뻤거든요. 졸업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그래도 학교에서 이렇게 부모를 초대해 명예 졸업장을 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조씨는 사회자가 이태원 참사를 ‘사고’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태원 참사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만 알아봤더라면 사고라는 표현보다 참사라는 표현을 썼을 텐데…아직도 이 일은 남의 일인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아버지 이종철씨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아들을 대신해 명예 졸업장을 받기 전 고인의 영정을 안은 채 눈물을 닦고 있다. 오른쪽은 어머니 조미은씨와 누나 이가영씨.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조씨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지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앞서 지난 5월 국회에서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하며 6월 특조위가 출범했어야 했지만, 국민의힘 위원 추천이 늦어지면서 출범하지 못했다. 지난 7월 국회가 특조위 명단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지금까지도 특조위는 출범하지 못했다.

“행정안전부에서 인사검증까지 마쳐서 대통령실에 올라가 있는 걸로 알아요. 7월말까지 임명을 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질질 끌고 있는 거죠? 이유를 모르겠어요. 너무 답답해요. 정말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하다가 뭉개듯이 지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조씨와 가족들은 명예졸업장을 들고 지한씨가 있는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졸업장을 전달하며 어떤 말을 해줄까. 조씨는 지한씨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어렵게 받은 명예졸업장이 되어버렸어. 네가 직접 와서 엄마랑 같이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너 없는 졸업장을 엄마 아빠가 영정사진을 들고 받는다는 게 너무 끔찍했어. 사실은 이 사진을 가지고 오지 않으려고 했어. 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데 네가 동국대를 어렵게 입학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네 영정사진을 들고 졸업장을 받았어. 너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커.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하고, 힘들게 받은 졸업장 잘 고이 간직할게. 조금 이따 보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왼쪽)씨와 아버지 이종철씨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아들을 대신해 명예 졸업장을 받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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