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사고와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

서울앤 2024. 8. 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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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 상가로 차량 돌진'급발진' 주장."

정상적인 차량 제어가 전혀 안 돼 큰 사고로 이어지는 차량 급발진 문제가 마치 차량 운전자 과실을 덮기 위한 변명처럼 쓰인 기사 제목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실제 운전자가 페달을 오인해서 발생한 사고라도 운전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페달을 잘못 밟았는지 차량 결함 급발진인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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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다연┃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 변호사

[서울&]

“고령 운전자, 상가로 차량 돌진…‘급발진’ 주장.”

요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정상적인 차량 제어가 전혀 안 돼 큰 사고로 이어지는 차량 급발진 문제가 마치 차량 운전자 과실을 덮기 위한 변명처럼 쓰인 기사 제목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실제 운전자가 페달을 오인해서 발생한 사고라도 운전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페달을 잘못 밟았는지 차량 결함 급발진인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더욱이 운전자 나이까지 덧붙인 기사에는 운전자에 대한 비난 댓글이 이어진다. 사고 원인 분석이나 예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분열과 감정적인 비난만 실리게 되는 이러한 기사들을 실제 급발진 피해자가 본다면 더욱 애가 탈 것이다. 아무리 비정상적인 운행 모습을 보인 사고라 하더라도 사고 원인이 급발진인지를 입증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급발진 사고라면 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해 손해배상 여부를 가리게 된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생명, 신체, 재산상의 손해에 대해 제조업자에게 무과실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국민 생활의 안전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2002년부터 시행됐다. 1차적으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지만, 결과적으로 제조물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높여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기여하는 법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현실적으로는 고도의 기술로 제작된 제품에서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법원은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경감하고자 ‘사실상의 추정 원칙을 도입했고, 결국 2017년 4월18일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해 그 전까지 법원 실무상 인정되고 있던 입증책임 완화 법리를 법에도 반영했다. 피해자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손해가 초래됐다는 사실, 그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에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2017년 제조물책임법 개정 이후 국내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제조사가 책임을 진 것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한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상 증명책임 완화규정은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의미가 없지는 않으나, 피해자가 제조업자의 실질적 지배영역과 결함과 손해 간 통상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증명책임 완화규정의 적용을 받기까지는 큰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야를 막론하고 제조물책임법상 입증책임을 큰 틀에서 개정하려는 법안이 발의되는 이유도 이러한 어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제어되지 않은 것인지, 오인해 가속페달을 밟은 것인지 이 단순한 구별은 페달 블랙박스와 같은 기술적 장치만 설치하면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급발진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해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추측성 기사에 따른 불필요한 비난과 혐오를 멈추기 위해서는 페달 블랙박스와 같은 기술적 장치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적 유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관리법 개정, 보험료 차등 등의 유인을 통해 페달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장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치가 마련되면, 사고원인 분석이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월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교차로 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관들이 중단거리 3D 스캐너를 이용해 현장을 측정하고 있다. 차량 사고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차량이 제어되지 않은 것인지, 오인해 가속페달을 밟은 것인지 구분하기 위해 페달 블랙박스와 같은 기술적 장치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적 유인이 필요하다.

사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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