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과 '침묵' 두 갈래 선택지 제시한 연극 '보도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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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쓴 공동사직서 문구를 주인공 '주혁'이 읊조리자 객석이 무거운 침묵에 쌓였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개막한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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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쓴 공동사직서 문구를 주인공 '주혁'이 읊조리자 객석이 무거운 침묵에 쌓였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개막한 연극 '보도지침'의 한 장면이다.
'보도지침'은 1986년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지 '말'에 정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 사건을 법정 드라마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사건에 연루된 언론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995년에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보도지침을 폭로한 기자는 '주혁'으로, 월간지 '말'은 '독백'으로 각색됐다. 또 '독백'의 발행인 '정배'와 변호인 '승욱', 이들과 맞서는 검사 '돈결'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 대학 시절 연극반 동기였다는 설정이다.
작품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주혁과 정배의 법정과 동아리방을 수시로 교차하며 진행된다. 함께 금서를 읽으며 폭압적인 정권에 맞섰던 친구들은 법정 양쪽으로 갈라져 '언론 자유'의 본질을 두고 다툰다.
다툼의 쟁점은 '독백'과 '침묵'이다. 주혁 등은 "가장 진실한 말, 마음의 소리를 독백이라 부른다"는 연극반 선배의 말을 철저히 추종한다. 그들에게 보도지침은 독백의 자유를 훼손하는 '절대악'이다. 정배가 월간지 '독백'을 창간한 이유다.
반면 돈결은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며 국익을 위해 정부가 요청한 '보도협조사항'을 폭로한 것은 '방종'이라고 몰아세운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는 연극반 출신 학과장의 회유가 돈결의 발언 뒤에 덧붙여진다.
"무엇을 보도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언론에 있다면, 무엇을 처벌할 것인지를 정할 권한은 자신과 같은 법조인에게 있다"는 돈규의 최종 변론에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주혁 일행은 물론 관객들까지 아무 대꾸도 못 할 정도로 얼어붙게 만든다.
결국 주혁과 정배가 무기력하게 유죄라는 처참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연극이 마무리된다.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설정과 속도감 있게 이어지는 대사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40년 가까이 지난 사건을 다루는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의 열연이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다만 부잣집 아들인 돈결이 대학 시절 정부 지침에 반하는 연극을 올렸다가 경찰에 끌려가 회유당한 뒤 다른 길을 걷게 됐다는 설정은 다소 작위적으로 다가왔다.
'독백'과 '침묵'의 두 갈래 길을 제시하는 연극 '보도지침'은 다음 달 8일까지 상연된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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