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구체적 계획도 없이 구두로 사전통보”…뜬금없는 댐 건설에 들끓는 지역민심[현장에서]

이삭 기자 2024. 8. 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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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 한 도로에 환경부의 단양천댐 건설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환경부는 상방리 인근 선암계곡 입구인 우화교 상류에 용수전용댐인 단양천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삭 기자.

“댐을 지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주민들 몰래 필요도 없는 댐을 짓는게 말이됩니까?”

22일 오전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서 만난 박모씨(43)는 40년 넘게 하방리에서 살고 있다. 하방리는 환경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단양천댐 예정지와 1㎞ 정도 떨어진 곳이다.

박씨는 “정부가 남한강 지류인 단양천에 지역에 도움도 안 되는 용수전용댐을 만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수몰지역에 또다시 댐을 짓는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인근 단성면 지역이 수몰되면서 우리 부모님도 쫓겨나다시피 이주했다”며 “단성면 지역 주민들 대부분 수몰의 아픔을 한번 겪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댐 신설 발표 이후 단성면을 비롯한 단양군 곳곳에는 ‘충주댐 한번이면 됐다. 지역주민 무시하는 단양천댐 반대한다’, ‘단양천댐 건설 결사반대’, ‘단양천댐 건설 즉각 철회하라’ 등의 펼침막 수십 개가 내걸렸다.

지방2급 하전인 단양천은 21.5㎞ 길이로 대강면 방곡리 수리봉에서 단성면 가산리·대잠리를 지나 남한강으로 합류한다. 이 하천 주변으로 상방·중방·하방리 등의 마을이 형성돼 있다. 또 단양천을 따라 형성된 선암계곡에는 오토캠핑장과 야영장, 펜션 등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단양팔경 중 3경인 하선암(1경), 중선암(2경), 상선암(3경)도 선암계곡에 있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단성면사무소 앞에 환경부의 단양천댐 건설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환경부는 단성면사무소에서 900m 떨어진 선암계곡 입구인 우화교 상류에 용수전용댐인 단양천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삭 기자.

이종욱 단양군 이장협의회장은 “선암계곡 입구인 우화교 인근에 댐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하선암이 물에 잠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환경부의 14개의 기후대응댐 건설 발표에 이어 신규 댐 건설지 확정을 위한 주민 설명회가 시작되면서 댐 건설 예정지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김문근 단양군수와 단양군의회, 지역사회단체는 단양천댐 건설을 막기 위해 이날 ‘단양천댐 건설 반대 투쟁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날 발족식에는 주민 400여 명이 모였다. 오는 30일에는 단양중앙공원에서 ‘단양천댐 반대 군민 궐기대회’가 열린다. 단양군 지역사회에서는 지난 13일부터 ‘단양천댐 반대’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단양군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댐 건설 예정지 발표가 아무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장 단양천댐 건설 예정지 인근 주민들은 충주댐에 이어 또다시 마을이 수몰될까 우려한다.

단양군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달 25일 선암계곡 입구인 우화교 상류에 높이 47m, 저수용량 2600㎥의 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군에 통보했다. 환경부가 전국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을 발표하기 닷새 전이다.

환경부가 발표한 용수전용댐 단양천댐 건설 예정지인 충북 단양군 단성면 중방리 선암계곡 모습. 선암계곡 입구인 우화교 상류에 단양천댐이 들어서면 이곳은 모두 물에 잠기게 된다. 이삭 기자.

지윤석 단양군 안전건설과 과장은 “환경부 직원들이 찾아와 정확한 위치나 건설 규모·도면, 수몰면적 등 구체적 계획도 없어 구두로 단양천댐 건설계획을 통보했다”며 “단양은 충주댐 건설로 많은 수몰 이주민이 발생한 아픔도 있어 반대했지만 환경부는 그대로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단양군이 선암계곡 등고선을 참고해 자체적으로 분석한 단양천댐 수몰위치는 우화교 상류 700여m부터 하선암과 대잠리 마을 입구 부근이다.

단양지역은 1985년 충주댐 건설 여파로 군청 소재지인 단성면을 포함한 552만661㎡의 면적이 물에 잠겼다. 이 때문에 3000세대가 넘는 수몰 이주민이 발생한 아픈 과거가 있다. 수몰 이주민 일부는 고향을 버리지 못하고 상방·중방·하방리 등의 마을에 산다.

권일찬 단성면 중방1리 이장(52)은 “단양천댐이 들어서면 마을 전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방1리엔 30여 가구 주민 40여 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6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권 이장은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단성면 수몰로 이주하신 어르신들”이라며 “또다시 들려오는 댐 건설 소식에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군청에서 22일 오전 열린 ‘단양천댐 건설 반대 투쟁위원회’ 발족식에서 참가자들이 단양천댐 건설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이삭 기자.

또다른 기후대응댐 후보지인 충남 청양지역 주민들도 지천댐 건설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청양 지천댐 반대 대책위원회 회원 60여명은 청양문화체육센터 앞에서 지천댐 건설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청양 지천댐 반대 대책위는 댐 건설 반대서명운동도 진행 중이다.

장평면 죽림리 주민들은 청양 지천댐이 건설되면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10여가구가 수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구 청양군 장평면 죽림리 이장(70)은 “오는 27일에는 환경부 관계자가 직접 지역에 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를 연다고 하는데 주민들은 ‘지원금을 안 받고 터전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수입천댐 건설이 예정된 강원 양구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수입천댐은 저수용량 1만㎥의 다목적댐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양구군 주민들로 구성된 ‘수입천댐 건설 반대 추진위원회’는 지난 12일 춘천시 강원도청에서 집회를 열고 수입천댐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라고 요구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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