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 바흐 협주곡·비발디 ‘사계’ 첫 연주…“우아함 너머 내 소리 찾아”
“리드를 하니까 음악적 결정을 제가 내려요. 다양한 해석을 실험하면서 자유로움이 느껴지더군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9)는 자유란 말을 자주 꺼냈다. 지난 19일 줌 인터뷰 1시간 동안 14차례나 ‘자유’를 입에 올렸다. 계기는 지휘자 없는 현악 앙상블과의 협연. 작년부터 파리 체임버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 등과 공연하며 그가 악장을 맡아 리드했다. 다음 달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고음악 앙상블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과 공연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핵심 단원들이 만든 연주단체다.
연주할 곡은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비발디의 ‘사계’. 두 곡 모두 그가 국내에서 처음 연주하는 작품이다. 그는 “그동안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와 소나타들을 주로 연주했는데, 실은 바흐 협주곡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1, 3악장은 삶의 기쁨을 나타내듯 활기찬 데,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2악장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할 정도죠.” 그는 “2번 협주곡은 바흐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고, 감정적으로 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비발디 ‘사계’에 대해선 “다양한 실험이 들어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던 비발디의 열망이 들어 있어요. 연주자들도 기존 해석에서 벗어나 참신하게 해석하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되죠.”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크론베르크로 거주지를 옮겼던 그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짐도 악보와 옷가지, 악기 정도뿐이어서 어제 6시간 동안 승용차를 운전해 이사했어요.” 베를린 아파트에선 밤 10시 넘으면 연습을 못 했다. 크론베르크로 옮긴 것도 조용한 곳에서 연습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연주회 등 일정이 잦아 베를린에 자주 와야 했다. 그는 “이 도시가 저를 계속 부르더라”며 웃었다.
양인모는 이미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과 ‘바로크 활’로 연주한 음반을 녹음하는 등 고음악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도 바로크 작품은 어렵고 까다롭다. “어디 숨을 곳 없어 노출된 느낌이거든요.” 그는 “악보에 정보가 적어 템포 등 연주 방식이 다양하고, 조율과 악기 선택 등 여러 결정과 합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함께 연주할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연주해야 돼’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연주할 수도 있지’란 태도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악단이죠.” 이들은 현대 악기를 쓰면서 당대의 연주법을 활용하는 절충주의적 연주를 선보인다. 양인모는 “템포 등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서 기대되는 악단”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주제가 ‘바흐 패밀리(Bach Family)’다. 아버지 바흐의 전통을 이은 두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바흐와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의 작품도 들려준다.
한때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52)와 기돈 크레머(77)가 그의 목표이자 롤모델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처럼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진짜 나의 연주를 찾는 게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 되게 많은 용기가 필요하죠.” 그는 “누가 뭐라고 하고, 어떤 평가를 하든 ‘나는 이 소리가 좋아서 이렇게 연주할 거야’라는 단계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음악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자유예요. 나만의 영역을 계속 확장해 나가야 해요. 그러려면 음악적 확신이 있어야죠.” 그는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연주와 소리를 찾는 게 고민의 핵심”이라며 “우아하게 연주하는 것에 도취했었는데, 그것은 고민을 더 한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닌 것 같더라”고 했다.
2015년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인모니니’로 불린 양인모에게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은 ‘인모리우스’란 별칭을 더해줬다. 갈수록 공연이 많아지면서 내년에만 15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해야 한다. 처음 연주하는 곡들도 많다. 그는 “번아웃이 오지 않게 연습하는 게 숙제”라고 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제발 전화 좀 받아”…부천 호텔 화재, 연기에 갇혔다
- [영상] 부천 호텔 화재 현장
- 김종인 “새벽에 이마 깨졌는데 응급실 22곳서 거절당했다”
- 윤 대통령, 안세영 참석 만찬서 “낡은 관행 과감히 혁신”
- ‘사람 죽인’ 정신병원 신체 강박이 “고난도 치료법”이라는 신경정신의학회
- 처서에도 ‘거의 40도’…서풍 들어오는 서해는 여전히 뜨겁다
-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이들이…내가 알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 내수 살릴 책임, 금리에 떠넘긴 대통령실...‘짠물예산’ 짜뒀나?
- “곧 퇴임, 누가 말 듣겠나”…‘김건희 무혐의’ 받아든, ‘무력’한 검찰총장
- 1973년 ‘또또사’ 김문수, 2024년 ‘태극기’ 김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