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네트워크 규모 싱가포르 제치고 세계 1위로… 尹정부, 통상정책 로드맵 발표
‘글로벌 사우스’ 협력 확대로 자원 공급망 확보
수출통제 제도 정비… 산업안보 전담조직 강화
미·중 무역전쟁과 중동 사태 등의 영향으로 공급망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윤석열정부가 잔여 임기동안 추진할 통상 정책을 담은 ‘통상정책 로드맵’을 22일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통상정책 로드맵에는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경제 규모의 90%까지 확대해 세계 1위 FTA 허브국가가 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천연자원이 많은 몽골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탄자니아, 조지아 등 개발도상국과 경제동반자협정(EPA) 체결을 추진하고, 영국·칠레·중국·인도 등과는 기 체결한 FTA의 업그레이드를 도모한다. 2019년 협상이 중단된 한·일·중 FTA 협상도 재개하고, 다자간 공급망협정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활용도 제고와 미국·일본·호주 등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통상정책 로드맵을 확정해 발표했다.
최근 글로벌 통상 지형은 자유무역 기반의 공급망 세계화가 퇴조하면서 각 국가별로 공급망 교란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위구르 지역의 강제노동 방지법을 시행하면서 대중 수출과 투자 제한이 지속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금과 석유의 수입도 금지됐다. 중동에서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해운물류 핵심지인 수에즈운하 이용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주요국이 경제 안보를 중시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첨단산업의 가치 사슬 체계가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자유무역 체제를 옹호하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도 힘을 잃고 있다. 가입국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던 WTO 상소심 체제가 2019년 이후 사실상 멈추는 등 WTO의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 FTA 네트워크 세계 경제 90% 수준으로 확대
정부가 발표한 통상정책 로드맵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경제안보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통상 중추국가 실현’이라는 목표로 수립됐다.
핵심은 FTA 네트워크 확대다. 신흥시장과 개도국과의 FTA를 체결해 FTA 네트워크를 세계 경제 규모의 90%(FTA 네트워크 체결국의 GDP 규모를 합산해 추산)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현재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합산하면 세계 경제의 85% 수준이다. 이는 싱가포르(약 88%)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정부는 임기 내 10국 이상의 나라와 EPA 및 FTA를 신규 체결하고, 기체결한 GCC FTA, UAE CEPA 등에 대해선 신속히 발효해 세계 1위 FTA 허브 국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9년 협상이 중단된 한일중 FTA 협상도 재개한다. 현재 한일중 3국 정상은 지난 5월 열린 정상회의에서 한일중 FTA 협상 재개를 공식화했다. 동아시아 경제 협력 확대를 위해선 3국 FTA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가입 논의가 중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주력한다. 국내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 간담회 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향후 CPTPP 가입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칠레, 인도, 중국, 아세안 등 기존에 체결한 FTA에 대해선 업그레이드를 추진해 공급망 협력 강화 등 신통상질서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다.
전략적 균형추로 부상하고 있는 아세안·인도·중동·중앙아·아프리카·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여 우리의 수출·생산기지·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역대 최초로 개최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및 ‘한-중앙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 등 다자플랫폼을 활용한 경제·산업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외투 촉진·주요국 전략적 협력 강화 방안 담아
첨단산업 기술개발 지원 강화와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외국인 투자 유치 방안도 이번 로드맵에 담겼다.
정부는 국제통상규범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첨단기술 개발을 위한 기업활동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정부간 R&D를 중심으로 공급망과 첨단기술 등 핵심 R&D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 첨단 산업 대규모 투자, 경쟁력 있는 소부장 생태계 등 한국 산업 생태계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외국인 투자 유치 활동도 적극 전개한다. 외국인투자에 대해선 현금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국가첨단전략 기술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한다.
국제추세에 발맞추어 수출통제 제도도 정비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무역·투자·기술 안보 이슈에 대한 전방위적 대응을 위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과 유사한 한국형 산업안보 전담조직 강화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국과의 전략적 협력 강화 방안도 로드맵에 포함됐다. 정부는 미국과 차세대 반도체 분야를 포함한 첨단산업에 대한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예일, 존스홉킨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대학 연구소 내 산업기술협력센터를 설립하고 공동 R&D를 추진한다. 미국 대선 등 정치 이벤트 영향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미 통상 리스크에 대한 대응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아웃리치 활동도 강화한다.
일본과는 교역과 공급망 등 통상 문제에 있어서 유사한 입장을 갖고 있는 만큼, 각종 국제회의에서 글로벌 의제 공동 대응을 추진한다. 한일 관계 회복 무드를 바탕으로 양국 간 산업·통상·에너지 전반의 협력도 추진한다.
중국에 대해선 투자기업의 예측 가능한 경영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공급망 핫라인을 비롯한 수출통제 대화체 활성화를 추진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엄중한 글로벌 통상 환경 하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우리 경제와 기업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내외 통상 인력 전문성 강화 등 통상 인프라 확충 방안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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