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는 바보야"…G2 중국 만든 '총지배인' 덩샤오핑
탁월한 정치력과 나눔으로 더 강해졌던 권력, 현 중국에 시사점 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유명한 '흑묘백묘론'은 원래 쓰촨 지방의 속담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운동 서슬이 시퍼렇던 1958년 그는 이 속담을 인용하며 '실용주의'를 주장하다가 거의 죽을 뻔했다. 덩샤오핑이 두 번째로 쫓겨났던 1976년, 마오쩌둥이 먼저 죽었다. 세 번째 복귀한 덩샤오핑은 곧장 '시장경제론'과 '선부론'을 앞세워 중국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지금의 G2 경제대국 중국의 출발이었다.
22일 덩샤오핑 탄생 120주년을 맞아 중국 내에선 기념우표를 발간하는 등 덩샤오핑 리더십 재조명에 한창이다. 다만 정부 차원의 기념과 축하는 예상보다 소극적인 분위기다. 중국 경제지표가 불안한 방향을 가리키는 가운데 경제대국 중국을 설계한 덩샤오핑 리더십을 조명하면서 현재의 경제실정론에 힘이 실릴까 우려하는 기류도 읽힌다.
막판엔 완전히 갈라섰고 자기를 죽이려고까지 했던 마오쩌둥의 지위는 국부로 공고히 했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 등 명백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치세에 대해 "공이 70%, 과오가 30%라고 평가해준다면 만족한다"고 말하고 죽었다. 소원대로 그의 치세를 '공7과3'으로 인정했다. 마오가 갖는 정통성 위에 공산당 권력을 세워야 개혁개방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 유명한 3중전회(11기 중앙위 3차전원회의) 개혁개방 선언을 통해 대외 개방과 경제개혁 추진 의지를 밝힌다. 3중전회 직전 일본을 방문해 철강 등 산업현대와 핵심 요소들에 대한 협력을 약속받고 온 터였다.
덩샤오핑 개혁개방 작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다음달인 1979년 1월 28일 시작된 미국 방문이다. 덩샤오핑은 미국 텍사스의 한 로데오 경기장을 찾았고, 현장 여직원이 건네준 카우보이 모자를 덮어쓰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중국 설립 이후 죽의장막에 가려져 있던 중국의 지도자가 미국을 방문한 건 덩샤오핑이 처음이었다.
모자를 벗어 흔드는 그의 모습은 서구에 '덩 신드롬'을 낳았다. 중국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해야 했던 미국은 포드자동차와 보잉 등 핵심 산업기지들을 숨김 없이 보여주며 기술 이전을 약속했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유명한 '흑묘백묘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잘 먹고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21년 전과는 달리 그런 그를 공격할 수 있는 권력은 아무도 없었다.
중국은 서서히 세계의 공장이 됐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게 중국식 자본주의의 틀을 잡은 그는 1989년 9월 당 중앙 정치국에 문건을 보내 "내 생명은 당과 국가에 귀속해 있다"고 밝혔고 같은 해 11월 9일 권력을 내려놨다. 1997년 2월 19일 사망한 그의 유언에 따라 각막은 안구수술용으로, 시신은 해부실험용으로 기증됐다.
중국 내에선 당연히 과보다 공을 높이 치는 분위기다. 이유는 경제적 성과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외칠 당시 200달러이던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그의 후계자 격인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를 거치며 6000달러를 넘어섰다.
덩샤오핑 집권 당시 중국공산당은 문혁의 후폭풍 속에서 파벌 간 권력투쟁이 극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생전 지명했던 후계자들은 남김없이 제거했지만, 이후 다양한 파벌들이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하는 집단적 리더십을 선택했다. 다툼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하고 서로 견제하도록 해 통솔했다. 젊은이들은 물론 당 원로들의 지지도 견고했다.
권력을 나눴는데 역설적으로 그의 권력은 더 강해졌다. 탁월한 정치력이었다. 에즈라 보겔은 저서에서 그런 덩샤오핑을 '중국의 총지배인'이라고 불렀다. 생활의 질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인민의 지지도 하늘을 찔렀다. 특히 장쩌민~후진타오 시대 중국은 매년 10% 이상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덩샤오핑에 대한 신격화도 빠르게 이뤄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틈 날 때마다 덩샤오핑 정신 계승을 언급하고 있지만 가는 방향은 상당히 다르다. 날로 강해지는 1인집권 체제는 덩샤오핑 체제에 대한 사실상의 부정이다. 시 주석이 집중하는 부패청산 작업도 덩샤오핑 체제 부정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권력을 나눠갖다보니 부정부패가 광범위해졌다'는 거다.
경제성장 성과를 내기도 갈수록 만만찮다. 시 주석 본인도 "쉽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개혁은 이미 완료됐고, 이제는 삼키기 어려운 단단한 뼈만 남았다"고 푸념할 정도다. 최근 바닥을 향해 가고있는 중국 경제상황 속에서 예상보다 조용한 덩샤오핑의 120번째 생일 분위기가 이런 의중을 반영했다는 해석도 있다. 덩샤오핑을 기념할수록 "지금 상황은 대체 뭐냐"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통역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전직 외교부관리 빅터 가오 중국및세계화센터 부소장은 현지 언론에 "당의 표현이 어떻게 달라지든 간에 중국은 여전히 중국 특색 부흥을 목표로 덩샤오핑이 정한 길을 따르고 있다"며 "그의 비전과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며, 중국을 세계에 개방하기 위해 그처럼 큰 그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뛰어난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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