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통일 독트린, 실천으로 보여줘야” [화정 인사이트 ③]
이어진 한미훈련에도 북, 이례적인 침묵 이어가
윤석열 대통령이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자유 통일을 위한 도전의 응전’이라는 제목의 ‘8·15 통일 독트린’을 제시했다. 지난 199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 발전한 내용으로 자주·평화·민주 원칙에 따라 3단계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첫 대북 대화제의에 대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외부 정보를 북한에 유입시켜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전략도 발표됐지만 북한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는 20일 동아닷컴 대회의실에서 ‘8·15 통일 독트린’ 분석과 함께 최근 북한 움직임과 관련 재단 연구위원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정성윤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사회는 신석호 동아닷컴 전무가 맡았다.
을지프리덤실드 연습에도 조용
신석호=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기한 ‘8·15 통일 독트린’이 나온데 이어 8월 19일부터 한미연합 군사연습 ‘을지프리덤실드(UFS) 연습이 시작되었는데도 북한이 조용하다.
박원곤=북한은 두 국가 공언 및 통일 포기 선언하고 8개월간 움직임이 없었다. 이번에도 전 같으면 온갖 매체를 동원해 비난을 했을 것이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평안북도와 자강도 등의 수해가 심각해 보이고 김정은의 움직임도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현재로선 UFS 대응보다 내치에 집중해야 되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석호=우리가 연합훈련을 하면 북한은 늘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지 않았나.
정성윤=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연합훈련을 북침 연습, 핵전쟁 준비라는 논리로 국제법과 정전협정을 위반하며 항상 도발로 대응을 해왔다. 당장 대응이 없다고 예외적이거나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이 교전중인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한 것을 고려할 때, 특히 우리의 8·15 경축사 통일 비전에 대해서는 국제법을 들먹거리며 강력히 반발할 것이 유력하다. 아마 8·15 경축사와 UFS를 묶어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신석호=이번 ‘8·15 통일 독트린’의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정구연=1994년에 처음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 나왔다. 30년이 지난 지금 왜 통일 독트린이 나왔느냐 비판이 있긴 하지만 시의적절 하다고 생각한다. 1994년엔 데탕트 시기였고, 남북과 국제사회도 화해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 입장을 모호하게 남겨둘 수 없다. 8·15 통일 독트린을 통해 북한의 두 국가에 대한 대응조치는 물론 우리의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좀 더 구체화 시킨 것으로 본다.
박원곤=8·15 통일 독트린에서 민족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전체적으로 핵심 개념은 자유주의적 목적에 맞춰진 것이다. 기존의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보다는 훨씬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에 맞춰서 작성된 안으로 본다.
정성윤=이번 독트린의 특징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통일을 접근했다는 점이다. 기존 제도 중심의 통일정책과 차별적이다. 통일에 대한 체감수준, 통일 필요성에 대한 확장력, 통일정책에 대한 설득력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8000만 민족이 가야 할 방향을 자유와 인권의 확장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에 대한 정당성이 강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한다. 통일 환경이 바뀌고 북한이 통일을 지우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통일 정책과 방향을 말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꾸준히 대화와 지원 제의 이어가야
신석호=8·15 통일 독트린의 남북 대화 제의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원곤=사실 실효성은 별로 없다. 북한은 이미 2019년 12월 7기 5차 전원회의 때 정면 돌파전을 선포했다. 거기에 ’두 정부 국가론‘까지 들고 나왔다. 어떤 형태로든지 대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화 제의를 안 해야 되느냐 그것은 아니다. 대화 추진과 동시에 인도주의적 지원도 꾸준히 천명해야 한다.
정성윤=이번에 발표된 것은 장기적 통일비전과 전략이다. 우리가 마땅히 추진해야 할 가치와 견지해야만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30년 동안 역대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했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실효성이 높아서 유지되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실효성만 따지는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북한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퇴행적인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국민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지속 가능한 비전이 되지도 못할 것이다.
신석호=북한은 그동안 전략 전술에 따라 남북 대화의 온 오프를 결정했다. 북한이 대화로 복귀한다면 어떤 조건, 어떤 상황일까.
박원곤=내년 상반기에 출렁일 것이다. 북한은 경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제재 해제와 관련하여 11월 미국 대선을 예의주시 할 것이다. 해리스가 당선되면 한미 관계에 지속성은 유지 될 것이지만 트럼프가 되면 변동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매우 중요하다. 이번 대화제의는 우리가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 놓는 차원이다.
정구연=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북한 문제를 놓아 버린다기 보다는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알아서 하라는 기조가 될 것이다. 우려되는 상황이다. 세 가지 통일비전을 제시하고 세 가지 통일 추진전략을 제시하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일곱 가지 통일 추진 방안 액션 플랜을 덧붙이는 337구조는 채워놓아야 할 부분이 많다.
신석호=북한이 대화의 문을 열었을 때, 가장 우선시 되는 의제는 무엇인가.
박원곤=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 의제를 맞춰봐야겠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제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 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모든 주제를 다 열어놓되 우선순위는 상대방과 이야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북한 비핵화 협상은 남북 간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북핵 위협의 직접 당사자다.
정성윤=윤석열 정부가 구체적으로 대화를 어떤 주제로 할 것인가를 밝힌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화협의체 제안과 논의돼야 될 내용들로 8000만 남북한의 평화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어젠다로 이야기했다. 북한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다. 통일과 대북 정책의 주역과 지향은 북한주민을 포함한 8000 만 민족이다.
신석호=과거 정부들도 북한 주민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역시 효과가 없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원곤=북한은 이미 너무나도 변화되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보면 남조선 문화가 다 퍼졌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모습을 보면 북한이 스스로 통일교육을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주민들 사이에서 남한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다. 김정은이 위협을 느낄 만하다. 수해 현장으로 달려간 것도 북한판 MZ 장마당 세대를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다. 남한 문화 전파 속도가 북한 체제가 감당이 안 될 수준으로 빠르게 작동하고 있다.
정성윤=이번에는 북한 주민의 변화가 아닌 북한 체제, 북한정권의 통치 형태의 변화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념사를 보면 자유가 박탈되는 공포의 왕국 지칭에 이어 빈곤과 기아로 고통 그리고 변화를 이야기했다. 이러한 변화의 주체로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을 말했다. 아울러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될 때 북한의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북한 정권의 올바른 선택과 우리의 도움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 북한 주민 스스로가 북한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기대다. 엄격하게 말하면 북한 주민의 사상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
정구연=본격적으로 어떤 정책을 만들어 북한을 내부로부터 변화시킨다 이런 전략보다는 북한 주민들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불가역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유 통일 담론을 던졌는데 자유의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자유를 통일과 외교 정책에서 다양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박원곤=북한은 지금 거의 100% 시장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북한 시장화가 더욱 더 진행이 될수록 주민들의 시장 정보에 대한 기대 수준은 높아지고 북한 정권에 대한 기대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장마당세대를 상대해야 하는 북한은 큰 위기 상황이다.
북한 주민들 불만 임계치에 근접
신석호=변화는 있는데 주민들의 불만이 임계치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원곤=이렇게 100년을 갈 수도 있다. 조선도 임진왜란 이후에 경제 다 망가졌는데 100년을 갔다. 아무도 예상을 못한다. 북한의 붕괴나 급변 사태는 다른 차원으로 보인다.
정성윤=지도자가 국민을 책임지지 않고 국민 스스로 생존할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국가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보편적으로 평가한다. 지금 북한은 ’실패하는 국가‘의 상태로 보인다.
신석호= 정구연 교수심이 앞서 말씀하신대로 이번에 발표된 독트린의 337구조에 앞으로 무엇을 더 채워야 할까.
정구연=비전 세 가지와 7대 추진 방안을 긴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북한 인권만 거론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신장 위구르와 미얀마 인권 문제도 중요하다. 국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보편적 인권 문제를 보고 있다 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성윤=7대 추진 방안의 키워드는 사람과 협력이다. 7개 추진 방안 중 다섯 가지는 사람에 대한 것들이다. 남북한 8000 만 주민들이 통일의 주역이자 대상이라는 일관된 방향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개인의 통일 의지와 역량이 중요하기에 이를 위한 방책으로 다양한 통일 교육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두 개는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통일을 위한 협력을 다루고 있다. 특히 기존의 통일 공공외교가 주로 국제사회의 공감대 확산 견인에 방점을 두었지만, 이제는 이를 넘어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과 노력 구현을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력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한 점도 눈에 띈다.
박원곤=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 라는 담론 확산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얼마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추진하는지 이제부터 보여줘야 한다.
미래세대 통일교육 다양한 노력 절실
신석호=통일에 대한 국내 관심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통일연구와 함께 청소년들에게 통일 비전과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까.
박원곤=통일 교육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중요하다. 하나의 통합된 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통일교육 효과는 분명하다. MZ세대들이 통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절실하다.
정구연=여야 간 정권이 바뀌더라도 통일 연구는 일관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보수나 진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관계없이 통일에 대해서 보편적 이해가 되어 있어야 되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어떤 과제 보다는 어떤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정성윤=통일에 대한 당파적 갈등이 교육의 영역까지 부작용으로 미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통일 자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이념의 강제적 주입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렵다. 통일 교육은 연구가 뒷받침합니다. 통일 연구 생태계가 무너진 지 오래 되었다.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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