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가계대출에 발목잡힌 한은…금리 최장 연속 동결, 연내 ‘빅컷’ 어렵다
가계부채·부동산 우려, 급격 인하 어려워
韓美금리역전 현상도 언젠가 정상화해야
“연내 1회 0.25%P 금리인하에 그칠 것”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한국은행이 22일 기준금리를 13차례 연속 동결하면서, 금리 인하 시점과 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현재 3.50%인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묶어뒀다. 한은 설립 이래 가장 긴 연속 동결 기록이다.
실제 금리는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이날 한은은 수정경제전망도 함께 발표했는데 올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은 2.4%로 0.1%포인트 하향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도 2.5%로 같은 폭으로 내렸다. ‘물가 안정’에 가까워지고 있는 반면, 성장은 주춤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수출 증가세를 감안하면 성장 전망치 하향은 내수 부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다음은 인하’ 로 시선이 모아지는 까닭이다. 관건은 폭이다. 금리가 오래 묶인 만큼, 한꺼번에 0.5%포인트 이상 내리는 ‘빅 컷’ 기대도 나오나 갑작스런 통화정책 변화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 과열 우려와 이에 따른 가계빚 급증을 감안할 때, 연내 1차례 정도 0.25%포인트 금리는 낮추는 데 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가 내림세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힘이 빠지고 있다. 이날 한은은 5월 내놓았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2.5%를 3개월만에 2.4%로 낮췄다. 사실상 1분기 1.3% (전 분기 대비) ‘깜짝 성장’ 후 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하반기에도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 셈이다.
경제 성장 내용을 뜯어보면, 체감 경기가 왜 더 위축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분기 민간 소비의 성장기여도는 -0.1%포인트로 경제성장을 끌어내렸다. 건설투자(-0.2%포인트)·설비투자(-0.2%포인트) 등 다른 주요 내수 부문도 ‘마이너스(-)’ 기여도를 나타냈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8월 100.8로 전월보다 2.8포인트 하락했다.
소비가 닫힌 것은 곳곳에서 입증된다. 올 상반기 국내 명품 브랜드 매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샤넬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1% 감소한 5142억원으로 전해졌다. 샤넬 백화점 매출이 역성장한 건 1997년 국내에 첫 백화점 매장을 낸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와 관련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에서 금리도 정상화된다면, 불필요한 내수 부진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수 부진 등의 경기 상황으로만 본다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시점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물가안정’ 외 통화정책의 또다른 한 축인 ‘금융안정’은 금리 인하의 속도를 늦추는 요소다. 최근 서울 및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가계빚이 급증하면서,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있다.
금통위는 지난달(7월11일) 회의록에서도 모든 위원들이 수도권 중심 주택 가격 상승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 부채 증가세에 우려를 표명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금리가 높다고 하지만 대출은 계속 늘고 있지 않느냐”며 “지금은 금리를 내릴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계부채는 지금 금리 조건에서도 매우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24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96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분기 말(1882조4000억원)보다 13조8000억원 많을 뿐 아니라,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 공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도 부풀어 올랐다.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8로 전월보다 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21년 10월(125) 이후 최고치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현재와 비교한 1년 후 전망을 반영한다. 지수가 100을 상회하면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 비중이 더 크다는 의미다.
이처럼 가계부채 증가세와 내수 부진 우려 속 우리나라 금리 인하는 연내 한 번 정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인하 폭도 0.25%포인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 전환과도 관계가 있다. 22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선물시장 가격을 바탕으로 시장 참가자들의 정책금리 전망을 집계한 페드워치도구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0분 현재 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다음달 18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출 가능성은 64.0%로 전망됐다. 0.50%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실행할 가능성도 36.0%나 됐다.
신세돈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우리나라도 따라서 내릴 가능성은 있다”며 “올해 0.25%포인트 한 차례 정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현구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팀장도 “의견은 좀 엇갈리고 있고, 미국 결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올해 한번 정도 내릴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여전히 미국과의 금리차가 2.0%포인트를 유지하는 만큼, 미국과 같은 속도를 내긴 어려울 전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이 금리를 많이 내리더라도 금리가 이미 역전된 상태에서 그걸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선 우리나라는 빠르게 금리를 내릴 수 없다”며 “미국과 금리 격차 등을 생각했을 때 연내 한 차례 정도로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우리나라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수 있다”며 “돈이 풀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추가로 더 봐야하고, 물가안정 노력도 더 병행해야 하기에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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