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조윤수, 책임감으로 완성한 '박훈정 픽'의 이유 [인터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예상은 했지만, 배우 조윤수와 '폭군'의 채자경은 전혀 달랐다. 차가운 모습으로 강렬한 액션을 소화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번이 첫 라운드 인터뷰라며 의욕적으로 답변하는 모습 역시 강한 인상을 줬다. 조윤수가 자신과 전혀 달랐던 채자경을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 동시에 '박훈정 픽'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책임감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디즈니+ 오리지널 '폭군'(연출·극본 박훈정)은 '폭군 프로그램'의 마지막 샘플이 배달 사고로 사라진 후 각기 다른 목적으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서로 쫓고 쫓기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추격 액션 스릴러 드라마다.
조윤수는 '폭군 프로그램'의 샘플 탈취를 의뢰받은 기술자 채자경 역을 맡았다.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윤수는 '폭군'과 채자경은 물론 배우로서의 자신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폭군'은 박훈정 감독이 앞서 선보였던 '마녀'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세계관은 같지만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 앞으로도 무궁 무진한 확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마녀' 시리즈에서 김다미, 신시아 등의 신예 배우를 발굴했던 박훈정 감독이 '폭군'에서 선택한 배우가 바로 조윤수다. 조윤수는 치열했던 오디션 과정을 전하며 '폭군'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회사를 통해 연락을 받았어요. 감독님이 제 프로필을 보고 자경이에게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오디션을 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세 번 정도 오디션을 진행했어요. 감독님이 몸을 잘 쓰시냐고 물어보셔서 무용과 출신이라고 어필했어요. 사실 저는 액션을 해본 적이 없고 운전 장면이 나오는데 면허도 없었거든요. 감독님께서 '네 연기를 볼 수 있을 만한 자료가 많지 않은데 단편 영화라도 없냐'라고 물어보셨는데 그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오디션을 보고 나서 격투기 학원을 다니고 운전면허도 1종으로 취득했어요. 단편영화도 3~4일 정도 기획, 시나리오, 섭외를 해서 조악하게나마 한 편 만들었어요. 보여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간절했고 어필하고 싶었어요."
합격 여부를 알려주기로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아 포기하던 차에 합격 사실을 알게 됐다는 조윤수는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었다고도 털어놨다. 꿈에 그리던 배역을 따내긴 했지만, 그 이후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조윤수는 박훈정 감독에게 직접 캐스팅의 이유를 물어보고, 자신이 생각한 자경의 특징을 입히며 캐릭터를 완성해 나갔다.
"감독님께 왜 캐스팅했냐고 여쭤봤어요. 제게서 보셨던 자경이의 모습을 살리고 아쉬운 부분을 배제해야 하니까요. 감독님이 '생각했던 이미지와 맞는 지점이 많고,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위화감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래서 많은 용기를 얻었어요. 제가 봤을 때는 어떠한 상황에도 이상하리 만큼 평온함을 유지하고 큰 감흥이 없는 인물이었어요. 감독님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도 동의해서 그런 부분을 끌어내려고 했어요. 감정적으로는 확실하게 속이 비어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마치 쇠파이프 같다고 할까요."
특히 조윤수는 자경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생천 처음으로 숏컷도 시도했다. 처음에는 낯선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박훈정 감독의 말 한마디는 조윤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평생을 긴 머리로 살았는데 감독님의 제안, 의상 미팅 과정에서 계속 '짧게 짧게'가 나오다 숏컷이 당첨됐어요. 자경이가 일반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가진 건 아니라 직관적인 이미지로 연출하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속도 상하고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어요. 평생 봐왔던 모습이 아니라 당황했거든요. 그때 딱 감독님이 '머리 짧아져서 많이 춥니?'라고 연락을 주셨어요. 아주 좋다고 대답하니 감독님이 '깜짝 놀랐다. 자경이 느낌이라 매우 좋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속상한 마음이 싹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작품이 공개되기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이 공개된 후 공개된 중요한 설정 중 하나는 내면에 쌍둥이 오빠의 인격이 함께 존재하는 다중인격자라는 점이다. 대체로 자경이 전면에 나서지만, 순간순간 혼잣말을 통해 오빠의 인격이 튀어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윤수는 디테일한 면에서 차이를 두며 두 인격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다중인격이라는 특징이 자경이의 큰 특징이기도 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연구도 많이 했어요. 자경이와 오빠의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더 디테일한 면으로 파고 들어야 했어요. 감독님이 자경이가 가만히 있을수록 세 보이기 때문에 절제하길 바라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어요. 가장 큰 차이는 표정의 디폴트 값이라고 할까요. 자경이는 더 심드렁하다면 오빠는 특히 살육을 할 때 굉장히 신나보이게 표현했어요. 이 밖에도 말투나 표정, 각도에서도 차이를 주려고 했어요."
촬영이 진행되는 중간에도 연습을 멈추지 않고, 액션도 무리 없이 소화한 조윤수는 '폭군' 공개 직후 많은 시청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역시 '박훈정 픽'은 믿고 보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조윤수 역시 '박훈정 픽'이라는 수식어에 책임감을 느끼고 임했던 만큼 시청자들의 반응에 감사를 전했다.
"'마녀'를 좋아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나란히 이름이 붙는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어요. 부담감보다는 그만큼 잘 해내고 싶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명성에 누가 되지 말아야 하고, 기대해 주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다들 재미있게 보셨다고 해주셔서 다행이고 기분이 좋았어요. 특히 '시리즈가 10점 만점에 10점이라면 자경 캐스팅은 20점'이라는 댓글이 기억에 남아요. 연기하는 사람 입장으로서 '자경에 찰떡이었다', '감독님의 선택이 옳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거든요."
폭군을 본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함께 촬영한 배우들 역시 조윤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배들과의 촬영이 어땠냐는 질문에 "이 질문이 제 눈물버튼"이라고 말한 조윤수는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선배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저에게 '폭군'이라는 작품이 큰 선물이고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훌륭한 선배님들을 만나 것 역시 그중 하나예요. 촬영하면서 많이 배웠고, 아껴주시고 챙겨주시는 게 많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함께 홍보할 때도 눈물이 났어요. 차승원 선배님은 연기적인 조언은 물론 분위기도 밝게 해주셨어요. 선호 선배님도 항상 친절하게 웃는 모습으로 편안하게 대해주셨어요. 강우 선배님은 뒤에서 묵묵히 보시다가 격려도 해주시고 위로도 해주시고 친절하게 알려주셨어요."
박훈정 감독에게 '한국 무용을 전공해서 몸을 잘 쓸 수 있다'고 어필한 것처럼 조윤수는 배우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연기에 흥미를 가지게 된 건 드라마 '손 더 게스트'를 보고 나서다. 전공자도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일도 아니기에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윤수는 "이제는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고, 한국 무용 전공으로 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손 더 게스트'를 보고 '배우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연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컬트 드라마로 알려져있지만 주인공의 서사, 인물들 간의 관계에 매료됐거든요. 물론 제가 전공자도 아니고 따로 배워본 적도 없어서 직접 인터넷에 프로필을 올리면서 시작했어요. 8개월에서 1년 정도는 오디션을 보자는 연락을 받아도 작품을 하자는 이야기로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한 번 작품을 하니까 조금씩 단계를 밟아나가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아니라면 뭘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 전의 삶이 잘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배우라는 직업을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박훈정 픽'의 이유를 스스로 보여준 조윤수는 '폭군'을 통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나올지도 모르는 '폭군' 새로운 시즌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아직 신인이라 접해보지 못한 장르나 캐릭터가 훨씬 많아요. 다음에 어떤 장르의 어떤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를 맡게 될지 생각만으로도 설레요. 제가 아닌 사람으로 못 해본 일을 하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그 속에서 호평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폭군'의 새로운 시즌에 대해 들은 바는 없지만 원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건 느꼈어요. 저는 자경이로서의 다음 단계를 보여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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