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운동장에 아파트 고집하던 부산시 “공론에 따르겠다” 급선회…배경은?
박형준, 반대여론에 밀려 첫 후퇴
“사실상 사업 포기” 등 해석 분분
구덕운동장에 고층 아파트 건설을 밀어붙인 부산시가 반대여론에 결국 물러섰다. 부산시는 “의견수렴 결과에 따르겠다”고 밝혔으나 시민들은 ‘사업 포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여론에 밀린 첫 사례이다. 이 때문에 ‘아파트 고집’에서 ‘의견 수렴’으로 급선회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부산시는 20일 구덕운동장 재개발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고 “시민 의견을 직접 듣는 의견수렴 과정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사업 자체를 철회하는 것은 아니고 주민 의견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22일 부산시 자료 등을 종합하면 올 초 부산시는 구덕운동장 부지에 축구전용구장과 아파트를 짓기로 하고 국토교통부 도시재생혁신지구 공모사업의 하나로 추진했다. 올 2월 530가구(3개동·38층) 건립 계획을 세웠다가 지난 5월 850가구(4개동·49층)로 규모를 키웠다.
구덕운동장 재개발로만 알았다가 아파트 건립계획이 포함됐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아파트 건립을 밀어붙였고, 주민들은 반대서명운동(6월)으로 대응했다. 부산시는 지난 6일 600가구(4개동·36층)로 규모를 축소해 국토부에 공모사업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축소’가 아닌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어 지난 13일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을 상대로 한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하는 등 반대운동의 수위를 높이며 부산시를 압박했다.
구덕운동장 재개발은 박 시장을 비롯한 서구 지역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공약사업이었다. 재개발을 희망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의외로 커지자 박 시장 등이 사업추진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이번 ‘의견수렴’ 결정은 박 시장의 결단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 시장은 20일 “보다 나은 사업 추진을 위해 서구 주민을 비롯한 시민과 직접 소통해 합리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하려한다”고 밝혔다.
지역 정치인과 구청장의 반대 또한 사업추진 동력을 잃은 원인이다.
서구 지역 국회의원인 곽규택 의원(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문을 내고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곽 의원은 “대통령과 부산시장이 구덕운동장 재개발을 공약했지만, 고층 아파트를 지어 재개발을 하겠다는 공약은 없었다”라며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도시재생사업 취지에 반하고, 입법 취지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일부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초선 의원의 돌출행동”이라며 아연실색했다.
공 구청장은 지난 19일 기존의 입장을 바꿔 재개발 사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부산시에 “원점에서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주민들이 지난 13일 서구선거관리위원회에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한 것과 서구 주민 10만 5000명 가운데 2만여명이 재개발 반대에 서명한 점이 공 구청장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에 대해 사실상 ‘백지화’ 또는 ‘사업포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부산시의 한 관계자는 “부산시 행정이 오락가락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의견수렴’을 앞세웠지만 사실상 ‘백지화’의 전 단계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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