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고통이 곧 돈벌이 수단" 2차 피해 넘치는 유튜브 세상의 민낯 [스프]

이현정 기자 2024. 8. 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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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돈벌이가 된 젠더 폭력과 '2차 피해'

지난달 구독자 수 1천만 명이 넘는 인기 유튜버 '쯔양'이 수년간 교제 폭력을 당했다고 고백한 뒤, 온라인에선 온갖 2차 피해를 낳는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공개된 증거만으로도 그가 심각한 교제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확인되지 않은 과거 사생활을 들먹이며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했습니다. 황당하지만 성별에 기반한 '젠더 폭력' 사건에서 어김없이 벌어지는 일입니다.

젠더 폭력 사건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2차 피해'

지난 2018년 고(故) 구하라 씨가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의 교제 폭력을 폭로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 씨는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최 씨를 경찰에 고소했는데, 잘 알려진 연예인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피해자인 구 씨는 해당 동영상을 둘러싼 대중들의 2차 가해에 고스란히 노출됐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2022년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는 한 20대 남성으로부터 지속적인 2차 가해를 당했습니다. 가해자는 지난 5월 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 협박,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가 피해자에게 보낸 SNS 메시지 내용은 '자신을 만나면 맞아 죽을 것'이라는 위협이었습니다.

젠더 폭력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공격은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1964년 자신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남성의 혀를 물어 잘랐다는 이유로 사법당국과 언론, 이웃들로부터 각종 2차 피해를 당한 최말자 씨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다투고 있습니다.
▷ 관련 스프 글 : [더 스피커] 성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성폭력은 지금도 있다 (2023. 8. 20.)
[ https://premium.sbs.co.kr/article/5Qgr9oiNxBE ]

고질적인 '2차 피해'가 사회 문제로 부상한 건 2018년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 때입니다. 유명 정치인 등 각계 권력자들에 대한 폭로일수록, 폭로자에 대한 매서운 반격이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재판에서 폭로 내용이 사실로 인정된 뒤에도 공격은 계속됐단 점입니다. 폭로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는 비방과 신상 털기, 신변 위협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차 가해로 거리에 나뒹구는 온갖 거짓들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정말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19년 9월 9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 확정 판결 후 피해자 김지은 씨 입장문 중에서)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019년 9월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상고심에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불특정 다수의 공격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는 시도 때문에 여성 폭력(*성별에 기반한 폭력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인 점 등을 고려해 이하 '젠더 폭력' 대신 '여성 폭력' 용어를 사용) 사건의 신고율은 매우 낮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폭력을 끊기 위해 '2차 피해'를 처음으로 법률에 정의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2018년 말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법은 여성 폭력의 피해자가 △ 수사·재판·보호 등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 △ 집단 따돌림, 폭행·폭언 등으로 인한 피해 △ 사용자로부터 당한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나 인사 조치 등을 '2차 피해'로 정의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 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한 만큼, 과거처럼 수사기관에서 2차 피해를 입는 등의 부조리는 줄어들 걸로 기대됩니다. 반면 온라인을 통한 불특정 다수의 2차 피해는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이버렉카(논쟁이 되는 사건에 몰려들어 자극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이득을 취하는 유튜버)'로 불리는 유튜버들에 의해 돈벌이로 진화했습니다.

공갈 등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된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 '카라큘라(본명 이세욱)', '주작 감별사(본명 전국진)'

앞서 언급한 쯔양 사건에서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과 주작 감별사(본명 전국진) 등 '사이버렉카'들은 지난해 쯔양에게 "사생활 관련 의혹을 제보받았다"며 수천만 원을 갈취한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됐습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사적 제재'를 내세워 특정인의 약점이나 사생활에 관한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에 유포하는 사이버렉카 활동을 하면서 구독자 증가에 따른 광고 수입 외에도 약점 폭로와 맞바꾼 금품수수 등 공갈 범행을 수익 모델화한 약탈적 범죄를 자행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명을 내고 "여성들의 고통을 이용해 남성의 얼굴을 한 유튜버들이 돈을 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증가할수록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튜브 플랫폼 환경에서 사이버렉카는 여성의 피해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폭력으로 이해하고 사회적 대응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 방법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며 소비하는 문화는 이미 만연했다. (중략) 남성연대가 여성을 착취해서 수익을 얻는다는, 웹하드카르텔과 N번방에서 보아온 구조가 사이버렉카와 유튜브를 통해 되풀이되는 셈이다. 수익으로 직결되는 조회수 올리기에 큰 기여를 하는 혐오, 차별 콘텐츠를 방조하는 유튜브 플랫폼도 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24년 7월 23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명 중에서)

폭력을 끊어내려면

유튜브 코리아는 사이버렉카들이 쯔양을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들의 수익 창출을 곧바로 중지했습니다. 유튜브의 정책은 타인에게 악의적으로 해를 입히려고 했거나, 실질적으로 해를 입힌 경우 콘텐츠 제작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모은 만큼 빠른 조치가 이뤄졌지만,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에는 여전히 2차 피해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이현정 기자 a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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