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의 멘토’ 김미선 스포츠심리상담사 “실패를 활용하는 법”

윤혜진 객원기자 2024. 8.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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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흔들림 없는 멘털로 좋은 결과를 냈다. 일반인도 국가대표급 정신력으로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고 싶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15년 차 베테랑 스포츠심리상담사 김미선 박사로부터 금빛 솔루션을 받았다.

‘챔피언 메이커’ 김미선 스포츠심리상담사
스포츠의 세계는 냉정하다. 매번 이길 수만은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이 잘 안다. 그런데 막상 실천에 옮기려면 간단하지 않다. 또 피를 쏟는 노력을 하더라도 1등은 한 명뿐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스포츠심리상담은 1등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게 아니라, 1등만이 나의 목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도와주는 데 목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깨달음이 있을 때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케이스포츠심리상담센터를 이끄는 김미선 박사는 농구선수 출신으로 스포츠심리학 전공 후 삼성생명 선수단, 국가대표 선수단, 키움히어로즈 프로야구팀 등 여러 스포츠팀을 상담해왔다. 그리고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최종 6위를 기록한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선수를 비롯해 프로게이머 페이커, 쇼트트랙 이유빈 등 3000여 명의 운동선수를 상담했다. 그 과정에서 김 박사는 '재능을 넘어서는 노력’을 발견했다. 그 노력을 만들어내는 멘털 코칭 노하우를 모아 최근 책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펴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상담센터를 둘러보다가 세계적인 선수들의 명언이 적힌 금색 명함을 발견했다. 명함을 건네며 김미선 박사는 "아무래도 선수들이 금색을 좋아한다"면서 웃었다.

지는 멘털에서 이기는 멘털로 바꾸려면

2018년 OGN 다큐멘터리 ‘SKT T1: 더 체이스’를 통해 만난 페이커 선수는 상담을 하며 한참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압박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을 읽다 보니 운동선수가 아니어도 와닿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스포츠는 인생을 닮았어요. 무수히 넘어지고 일어나죠. 예를 들어 음악 입시생이나 큰 퍼포먼스를 내야 하는 면접을 앞둔 분들도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의 마음과 일맥상통합니다. 중요한 순간 긴장하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걸 100% 발휘해야 하잖아요.

강한 멘털은 타고난 성향과 훈련으로 길러지는 것 중 어디에 가깝나요.
스트레스에 강한 좋은 멘털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계획해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상담을 받기 전 한 번도 순위 안에 들지 못하다가 상담 후 순위권에 들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멘털 관리는 단기적으로 이뤄지나요. 아니면 꾸준히 받아야 하나요.
선수마다 달라요. 예를 들어 야구 박병호 선수는 이미 멘털이 강한데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일시적으로 홈런이 거의 한 달 동안 나오지 않았어요. 이럴 때는 길지 않은 상담을 통해 본인이 잘했던 순간의 리듬을 찾아주는 훈련을 해요. 반면 부정적인 생각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선수는 정서적인 치료 이후 자신의 목표를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강한 멘털이 완성되죠. 요즘은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멘털 교육을 받는 편이에요.

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선수도 워낙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던 터라, 멘털 관리가 특히 중요했을 것 같아요.
서채현 선수를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아시안게임 나가기 전에 처음 만났어요. 워낙 스포츠클라이밍을 좋아하고 잘하지만 어린 선수라 좌절에 민감할 수 있잖아요. 그 좌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와 부정적인 생각을 쉽게 갖지 않게끔 교육했죠. 이 훈련을 하지 않은 선수는 넘어졌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픔이고 고통이에요 그런데 서채현 선수는 실패하면 그 실패가 다시 일어나야 할 이유라고 생각을 전환한 뒤 다음 목표를 잡아요. 이런 선수들은 시합 나갈 때 "1등 하고 올게요"가 아닌 "약속한 것 지키고 올게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결국 상담의 목표는 '불안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달렸어요. 

국가대표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목표했던 일을 마치고 나면 허무하거나 아쉬움이 남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마지막에 했던 상담 중 하나가, 선수들이 각자 금메달을 딸 것이라 예상하고 그 마지막 경기 후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편지는 실제로 모든 경기를 마친 후에 읽어보고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해봐도 좋겠죠. 아니면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해 마지막 날 본인이 볼 편지를 써보는 거예요. '나는 올해 이렇게 살고 싶고, 이런 계획을 갖고 해나가면서 힘들겠지만 이렇게 이겨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12월 31일에 이런 느낌으로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까지 정리를 해보세요. 본인이 정한 디데이에 확인을 했더니 말한 대로 이뤄졌다면 뿌듯하겠죠. 물론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고, 예상 못 했던 일이 더 생겼을 수도 있어요. 혹은 '이때 이렇게 걱정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네’ 생각할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과정 안에서 자기가 자기를 위로해줄 수 있고, 함께 해줬던 조력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점이 아쉬웠는데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생각하며 이후 목표를 세울 수도 있어요.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

‘e스포츠의 메시’로 불리는 페이커 선수는 '리그 오브 레전드’ 국제 대회를 휩쓸지만, 2018년 깊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페이커 선수를 상담한 김미선 박사는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해줬다. 자신을 위로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다 보면 탈진에 이른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마음을 돌아봐야 문제점과 해결책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의지를 확인한 페이커 선수는 문제 해결책을 찾은 다음부터 거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 페이커 선수는 우승 기자회견에서 "승패를 신경 쓰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는 걸 목표로 삼았을 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계속 경기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의 색과 상관없이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표정이 밝았던 이유도 여기 있다.

어떻게 하면 세운 계획을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까지 이어갈까요.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먼저 잘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한 달에 3kg 감량을 목표로 세우면 여기에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식이조절, 운동 등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자기가 진짜 할 수 있는 방법 위주로 계획을 짜는 겁니다. 안 먹을 수 없는 사람은 하루 세 끼를 먹되 오후 7시 이후 야식을 먹지 않는 걸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만 생각하면 돼요. 그런데 대부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회식 땐 어떡하지’ 같은 불안감을 가져요. 리스크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행동에 집중하세요. 목표에 따라 하루, 3일, 일주일만 집중해보고 수정·보완을 해나가는 거죠.

자기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전제되어야겠군요.
그렇죠. 전쟁터에 나갔는데 내가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는지, 내 강점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싸우다 보면 초반에 무너질 수 있어요. 자신의 강점을 알고 이용할 수 있다면 싸움의 판도가 달라지겠죠. 자기 이해가 혼자서도 잘된다면 가장 좋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봐줄 다른 사람을 통해 진단하고 판단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자기 객관화를 하다 보면 타인과 비교도 하게 되잖아요. 살다보면 순위가 매겨질 때도 있고요. 자격지심이 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선수들도 시합에 나갔을 때 경쟁 선수, 스카우터의 시선, 관중의 환호나 비난 등 주변에 신경 쓰다 보면 마음이 흔들려요. 이런 경우에는 자기 앞에 마주한 것들이 노력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통제 가능한 부분인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통제 불가능해요.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춰준다 한들 좋게 보일 수도, 나쁘게 보일 수도 있어요. 키 작은 선수가 키 큰 선수를 부러워하면서 그 선수의 식단이나 운동법을 따라 해도 키는 크지 않아요. 스피드 같은 다른 장점을 더 단련해 그 친구를 넘어서야죠. 엄청나게 부자로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따라갑니까. 하지만 다른 행복은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통제 불가능한 부분을 인정하란 건가요.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도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아쉽게도 세상은 원래 불공정한 면이 있고요. 그럴 때 사람들은 무기력함에 빠집니다. 하지만 부정에 집중하느냐, 긍정에 집중하느냐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요. 불안에 집중하면 불안이 커져요. 한 테니스 선수가 상담을 왔는데, 잘하다가 무언가에 막히면 부정적인 생각이 빠른 속도로 그 선수의 머릿속을 채우더라고요. 그래서 왼쪽 팔목에 고무줄을 채워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마다 튕겨서 그 선수가 얼마나 많은 부정 속에 사는지 인지하도록 했어요. 첫 주는 인지에 실패했고 다음 주에는 손목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왔어요. 이후 오른쪽 손목에도 고무줄을 차고 긍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튕겨봤더니 3개월 후에는 오른쪽 손목도 멍이 들었어요(웃음). 긍정적 사고도 훈련으로 습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잖아요. 때로는 더 힘 빼지 않고 포기하는 것도 전략이지 않을까요.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할 때도 타이밍이 있어요. 본인이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또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더는 행복을 느낄 수 없을 때요. 부상에서 회복해 복귀했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괴로운 한 축구선수가 찾아왔었어요. 너무 잘했던 선수라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주변에서 중도 포기한 선수로 볼까 봐 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그 선수는 망가진 상황이었어요. 본인이 꿈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의 시선 때문에 남아 있는 건 아니죠. 그 일을 하는 목적과 목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해요. 포기를 하더라도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요. 포기는 또 다른 시작과 맞닿아 있어요.

행복하지 않았던 농구선수 생활, 은퇴 후 밑거름될 줄이야

박사님이 농구선수에서 심리상담사로 전향할 때는 두 경우 중 어느 쪽이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대학교 4학년 때까지 이어오면서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니까 괴롭더라고요. 그런데도 부모님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저를 뽑은 농구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었어요. 선수 생활이 너무 고통스럽고 외로운데, 이런 괴로움을 털어놓을 조력자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선수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의 변화를 보면 보람 있으면서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본인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있겠어요.
박사학위를 받고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선수들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집에 와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지금 이 선수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선수가 힘들 때 느끼는 감정이 저에게 전이되기도 했죠. 일과 생활을 분리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로는 매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그날의 생각을 씻어내요.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지금 여기 있는 그림들 다 제가 그린 거예요(웃음).

워킹 맘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친 상태로 퇴근해서 괜히 아이에게 짜증 낼 때 있잖아요. 그리곤 바로 후회하고요.
맞아요. 저 역시 박사과정 마치고 3개월 후 아이를 낳았는데 일에 집중하느라 아이를 잘 돌보질 못했어요. 그런데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진짜 잘 알아요.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6년의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이제는 알죠. 내가 마음이 깨끗해야 내담자도 행복하고 내 아이도 행복하다는 걸요. 마음이 복잡하다면 자신을 정화시키는 나름의 루틴을 찾아보세요. 무조건 고통을 참고 인내하면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힘든지 표현을 못 하게 돼요. 가끔 힘이 드는데 말로 표현을 못 하는 선수가 오면 제 그림을 활용해요. 선수들의 삶을 계단으로 표현한 그림을 보며 지금 어디쯤 있느냐 물으면 속마음을 좀 더 쉽게 말해줘요.

박사님의 도착지는 어디인가요. 지금 어디쯤 갔나요.
저는 선수 생활을 하며 청소년 대표를 했던 게 다예요. 올림픽에 나간 적은 없어요. 하지만 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와 마주한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게 도와줄 거야’ 생각했는데, 그 꿈을 이뤘어요. 선수들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서 줄타기를 해야 해요. 아래를 보면 너무 무섭죠. 자신에게만 집중하라고 누군가가 끊임없이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근무지에서 일주일 내내 일하는데, 선수들이 갑자기 찾아온 불안을 저한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세계 어느 선수든 불안할 때 찾아오면 언제든지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제 목표이고, 그러기 위해서 김미선 AI를 준비하고 있어요.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언제든지 질문에 답해줄 수 있도록요.

#올림픽 #페이커 #멘털관리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케이스포츠심리상담센터

윤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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