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긴장했으면…1군 데뷔전부터 10연속 볼볼볼볼, 한화 '파격 선발 카드' 20구 만에 끝났다
[OSEN=청주, 이상학 기자] 너무 긴장했던 걸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깜짝 선발로 내세운 우완 투수 김도빈(23)에겐 악몽 같은 데뷔전이었다.
한화는 지난 21일 청주 NC전 선발투수로 김도빈을 예고했다. 5선발이었던 김기중이 2경기 연속 조기 강판돼 2군으로 내려간 뒤 비어있던 로테이션에 김도빈이 깜짝 발탁됐다. 지난해 독립야구단 수원 파인이그스를 거쳐 올해 한화에 육성선수로 입단한 김도빈은 1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이다. 그야말로 파격 카드였다.
김경문 한화 감독은 21일 경기를 앞두고 김도빈에 대해 “나가서 5이닝을 잘 던져달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 라인업이 한 번 돌기 전까지 그동안 2군에서 연습한 걸 던진다면 앞으로 장래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2군에서 투구수 100개까지 5~6회를 던진 투수다. 지난달 한 번 1군에 훈련을 하러 왔을 때 직접 봤는데 신체 조건(190cm 95kg)도 좋다”고 평가했다.
한화의 대체 선발 자원으로는 좌완 신인 황준서도 있었다. 올해 11번 선발 경험이 있지만 김경문 감독은 과감하게 김도빈에게 기회를 줬다. “장래성 있는 어린 왼손 투수도 있지만 뒤에서 묵묵히 열심히 하는 선수에게 기회를 줘서 잘하면 팀에 새로운 힘이 된다. 재능이 안 된다면 기회를 주기 어렵지만 기회를 줄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그 기회를 주는 게 내 역할이다. 일단 3회까지 보고 있다”고 기대치를 나타냈다.
김경문 감독 말대로 김도빈은 올해 한화 퓨처스 팀의 핵심 투수로 활약했다. 구원으로 시작했지만 5월말부터 로테이션에 들어가 선발로 9경기를 던졌다. 퓨처스리그 성적은 17경기(49⅔이닝) 3승1패2홀드 평균자책점 3.99 탈삼진 67개. 최고 시속 149km 직구와 체인지업을 앞세워 9이닝당 탈삼진 12.1개로 구위를 보여줬다. 다만 볼넷도 43개, 9이닝당 7.8개로 제구 불안도 있었다.
1군 데뷔전에선 김도빈의 장점보다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1회초 NC 1번 타자 박민우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주고 시작했다. 직구와 체인지업 모두 존을 크게 벗어났다. 다음 타자 최정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이트 볼넷. 양상문 한화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3번 맷 데이비슨에게 던진 1~2도 모두 존을 빗나갔다. 10구 연속 볼.
데이비슨 상대로 던진 3구째 체인지업이 몸쪽 높은 쪽에 들어가 가까스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청주구장 홈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김도빈에게 격려를 보냈다. 4구째 파울 이후 5구째 체인지업이 바깥쪽 낮게 보더라인에 살짝 걸치면서 루킹 삼진이 됐다. 데뷔 첫 아웃카운트로 탈삼진이었다.
그러나 다음 타자 권희동에게 다시 4구 연속 볼을 던졌다. 볼넷 3개로 1사 만루가 되며 주자가 꽉 찼고, 김도빈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김휘집에게 3구 연속 체인지업을 던지며 피해갔지만 가운데 몰린 공이 2타점 좌전 적시타로 이어졌다. 결국 투구수 20개 만에 조기 강판. 계속된 1사 1,2루에서 나온 한승주가 서호철을 3루수 병살타로 유도하며 1회가 끝났다. 김도빈의 데뷔전 성적은 ⅓이닝 1피안타 3볼넷 1탈삼진 2실점. 한화가 2-8로 패하면서 김도빈은 패전투수가 됐다.
결과도 아쉽지만 과정은 더욱 아쉬웠다. 총 투구수 20개 중 스트라이크는 불과 5개. 나머지 15개는 대부분 존을 크게 벗어난 볼이었다. 최고 시속 142km, 평균 140km에 그친 직구(7개)보다 체인지업(13개) 구사 비율이 훨씬 높았다. 퓨처스 팀에서 한창 좋을 때보다 직구 구속이 뚝 떨어지다 보니 체인지업 위주로 유인하는 투구를 했는데 이마저 타자들의 배트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1군과 2군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고 하지만 퓨처스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투수가 이 정도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건 심리적인 부담을 빼놓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처음은 긴장된다. 1군 데뷔전, 그것도 모두가 주목하는 선발등판이란 점에서 과도한 긴장감으로 몸이 경직됐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4연승을 달린 한화가 5위 SSG에 1.5경기 차이로 추격하며 5강 싸움 뛰어들었고, 경기의 중요성이 큰 상황도 1군 경험이 일천한 김도빈에겐 막중한 부담이 됐을 것이다.
사실 퓨처스 팀에서도 김도빈은 제구에 약점이 큰 투수였다. 최근 5경기에서 20⅓이닝 동안 삼진 24개를 잡았지만 볼넷도 24개를 허용하면서 9이닝당 10.6개에 달했다. 시즌 초반보다 직구 구속이 떨어진 상태인데 레벨이 훨씬 높은 1군에서 약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론이지만 한화가 과감하게 꺼낸 선발 히든카드는 20구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김도빈이 내려간 뒤 한승주(2⅔이닝 무실점), 이상규(2이닝 1실점)가 5회까지 잘 버텼지만 타선 침묵으로 NC에 2-8로 패했다. 4연승을 마감한 한화는 5위 SSG와 격차가 다시 2.5경기로 벌어졌다. 본격적인 5강 싸움에 가세한 뒤 당한 1패라 아쉬움이 크다. 김도빈 개인적으로 입었을 내상도 걱정이다. 몸에 좋은 쓴 약,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길 바라야 한다. 2001년생으로 아직 23살, 앞길이 구만리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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