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준칙’ 尹 정부 내내 못 지켰으면서… 다시 법안 발의한 기재부 ‘자가당착’ 논란

세종=박소정 기자 2024. 8.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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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재정수지 적자 ‘3%룰’ 올해도 ‘요원’
정부, 의원입법 형태 새 재정준칙안 발의
세계잉여금, 국가채무 상환 의무 비율↑
“지키지도 못하면서 법제화 모순” 비판

상반기 나라 살림 적자가 연간 목표치는 물론 10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올해도 ‘재정준칙’ 한도를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건전 재정’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집권 3년째 이를 준수하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국회 때 통과되지 못한 ‘재정준칙’ 법안을 이번에 의원 입법 형태로 다시 발의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재정 건전성 지표인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사회보장성기금수지)는 상반기 기준 103조4000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올 한 해 연간 적자 목표치인 91조6000억원을 10조원 넘게 초과한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 연간 목표치 훌쩍 넘겨

정부는 상반기에 재정 신속 집행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여파로 관리재정수지가 안 좋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재정 건전성은 유독 악화한 모습이다.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2020년 1~6월(110조5000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윤석열 정부가 겉으로는 건전 재정 기조를 정체성으로 앞세우면서 집권 3년째가 되도록 실천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대표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상한)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재정준칙은 지켜진 적이 없었다. 집권 첫해인 2022년 -5%, 이듬해인 2023년 -3.6%를 기록했다.

올해도 이 비율을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올해 전망한 실질 GDP 성장률(2.6%)과 물가 상승률(2.6%)을 고려해 올해 명목 GDP가 2526조원(작년 명목 GDP 2401조원×105.2%)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3%룰(rule)’을 충족하기 위해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75조7800억원 이내여야 한다. 6월 누계 기준 103조4000억원이니 연말까지 적자 규모를 30조원 가까이 줄여내야 하는 셈이다.

정부는 경기 불황에 따른 세수 여건 악화가 재정 건전성 관리의 발목을 잡는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3년째 이런 성적을 지켜본 재정 전문가들은 대중에 공언한 것에 비해 건전 재정을 달성할 실력이나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세입이 모자라면 조세·재정 지출을 더욱 줄여 목표를 맞춰야 했고, 실현 불가능할 것이었다면 애초 건전 재정을 지킬 것처럼 강조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3년 3월 14일 21대 국회 당시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재정준칙 도입에 관한 공청회의 모습. /뉴스1

◇ ‘22대 국회 버전’ 재정준칙 발의… “현 정부서부터 준수해야”

정부는 22대 국회에서 새 재정준칙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다시 추진하고 있다. 박대출 의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지난 14일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 국회 때 절충한 여야 합의 사항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정 건전성 관리 방식을 더욱 강화했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상 세계잉여금 발생 시 지방교부세→공적자금상환기금→국가채무 상환 순서로 사용한다. 이 중 현재 ‘교부세+공적상환기금’에 주고 남은 금액의 30%를 상시로 국가채무 상환에 쓰도록 돼있는데 이를 50%로 올렸다. 또 예기치 못한 경기 침체 등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못 지켰을 때는 이 비율을 100%로 올리기로 했다.

이밖에 ‘기획재정부 장관은 5년마다 관리재정수지 허용 한도의 적정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문구가 국회 보고 의무 사항으로 바뀌었고, ‘공포 후 즉시’ 시행이 ‘익년도(다음 해) 1월 1일부터’로 수정됐다. 정작 지킨 적 없는 재정준칙의 규율을 되레 강화한 셈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2년 연속 예산 대비 세입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부분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정부여당이 자꾸만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격”이라며 “지금의 재정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난 뒤 재정준칙 법제화 논의를 하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라고 지적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책 없이 무조건 지출을 줄이겠다고만 하지 말고, 되레 증세 조치를 의무화한다든가 하는 현실적인 재정준칙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3%대로 억제해 예산안을 편성하는 등 재정준칙에 준해 허리띠를 졸라맨단 방침이다. 하지만 이것이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법 개정 이전이라도 현 정부 때 준칙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내용에 대해 이번엔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다”며 “새로운 국회가 꾸려진 만큼 정부가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한 설득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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