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만약에’… 수현이를 살릴 수 있던 순간들 [막을 수 있는 아동학대③]
피해 아동 10명 중 9명은 원가정으로 복귀
‘재학대’ 1천334건 악순환 반복… 대책 필요
함께 지켜야 할 아이들, 막을 수 있는 아동학대 ③수현이의 죽음 막을 수 없었나
2020년 5월20일 태어난 수현이(가명)는 47일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47일동안 수현이는 자신을 지켜줘야 할 친모 손에 잔혹한 학대를 받다 두개골이 골절됐고, 뇌출혈까지 생긴 상태로 생을 마감했다.
그 짧은 생이 매일 같이 학대로 얼룩졌던 아이, 수현이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을까. 경기알파팀은 수현이 친부모의 아동학대 사건 1심 판결문을 분석, 수현이를 살릴 수 있었던 수많은 ‘만약에’를 찾아봤다.
수현이의 친모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를 낳길 원했고, 시험관 시술 끝에 수현이를 임신했다. 그 시기 수현이 부친의 PC방 사업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부산에서 하남시로 이사를 왔다. 6.45평의 좁은 오피스텔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2020년 6월7일, 수현이의 친모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했다. 남편은 양육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비좁은 오피스텔에서 홀로 수현이를 돌보면서 점점 산후우울증이 심해져 갔다. 수현이가 우는 소리만 나도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나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몸을 때리기도 했다.
‘만약에, 수현이 친모가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김민애 경기도거점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이 순간이 수현이를 살릴 ‘첫번째 만약에’라고 말했다.
김 관장은 “아동학대 발생 요인 중 원치 않은 임신도 포함되는데, 수현이 친모도 원치 않은 임신에 시험관 시술까지 했으니 아이를 예쁘게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6.45평의 오피스텔은 육아를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데, 아이를 낳고 국가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제도들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친모가 정부 지원 정책을 알고 도움을 받았으면 산후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학대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현이 친모의 학대는 판결문에 기재된 것만 일곱 번이다. 2020년 6월9일·6월17일·6월25일·6월29일·7월2일. 그리고 수현이를 죽음으로 몰고간 같은 해 7월 3~6일, 최소 두 번의 학대가 더 있었다.
수현이가 학대를 당한 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분유를 제대로 먹지 않는다’였다. 몸에 멍이들 정도로 이어진 학대였다.
‘만약에, 이웃 중 누군가 수현이의 지속된 울음을 의심하고 신고했다면 어땠을까.’
김 관장은 이를 ‘두번째 만약에’로 꼽았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오피스텔 특성상 밤에 아이가 울면 옆집에 들릴 수 밖에 없다”며 “주변 이웃이 아이가 우는 소리가 지속될 때 관심을 갖고 신고를 해줬다면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친모는 수현이를 학대하면서 남편에게 여러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내용의 메시지가 회사에 간 남편에게 전송됐다. 아이를 때려 멍이 들었다는 얘기도 했다. 심지어 수현이가 맞는 모습을 보고 친모의 품에서 아이를 뺏은 적도 있었다.
‘만약에, 수현이의 친부가 이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세번째 만약에’다.
김 관장은 “산후조리원이나 출생신고시 국가 차원으로 부모 교육을 받도록 하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수현이 부모도 아이를 키울 때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법이나 이런 것도 달라졌을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부모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지원 사업에 대한 홍보나 안내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더라면 수현이가 사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가정 內 아동학대 예방 매뉴얼·국민 교육 ‘부재’
경기알파팀은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수원지방법원과 산하 지원 다섯 곳, 의정부지방법원과 산하 지원 두 곳까지 총 아홉 곳의 재판부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이나 아동복지법 위반 등 경기도내 아동학대 사건에 내린 1심 판결문을 살펴봤다. 판결문 속 수많은 ‘만약에’가 존재했고, 수현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막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중 일부를 김민애 경기도거점아동보호전문기관장의 도움을 받아 분석해 봤다. 우리가 놓친 수많은 ‘만약에’다.
■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관심과 교육 있었다면
정연이(가명)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인 2022년 6월26일, 친부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환경미화원이던 친부는 오전 3시30분에 출근해야 하는데, 정연이가 밤늦게 까지 울고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인용 이불 여러 개로 아이를 덮어뒀다. 6월초부터 반복된 행위. 정연이의 친모는 이 모습을 보고 곧장 이불을 걷으며 남편에게 위험한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학대는 이어졌다. 6월26일, 또다시 정연이를 이불 3개로 덮어둔 친부는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밥을 먹으며 1시간이나 아이를 방치했다. 그렇게 다음 날 새벽, 정연이는 저산소로 인한 뇌손상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 관장은 이들이 부모교육을 받았더라면 본인의 행동에 대한 위험을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만약 친모가 여러 번 이 같은 행위를 목격했을 때 아이를 분리했더라면 정연이는 아직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부모교육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친부는 자기 행동이 과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친모 역시 6개월 동안 여러 번 위험한 행동임을 발견했음에도 아이를 다른 방에서 재우거나 분리시키지 않았다. 분리해 양육했더라면 아이가 죽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일곱 살인 정호(가명)는 다섯 살 동생 지호와 2022년 3월15일부터 같은 해 9월4일까지 안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방치돼 학대를 받았다. 집 안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했고, 애완견 변까지 쌓여 악취를 뿜어냈다.
김 관장은 “방임 기간을 보면 여름이 포함돼 있어 악취가 상당했을 것”이라며 “이웃 주민들도 분명 이상함을 감지했을 텐데, 이웃 중 한 명이라도 경찰에 신고를 했다면 어린아이들이 일찍 발견될 수 있었고 덜 상처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 매뉴얼만 지켰어도…막을 수 있었던 어린이집 아동학대
의정부시에 있는 한 어린이집 교사 장추자(가명)씨는 2018년 12월13일부터 2019년 2월19일까지 3개월 동안 아이들을 학대했다. 판결문에 적힌 학대 횟수만 297회에 달했다.
장씨는 간식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아이를 밀어 책꽂이에 부딪치게 하거나 포크와 장난감으로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다. 신체적 학대는 물론이고 정서적 학대도 있었다.
무엇보다 장씨의 학대는 같은 반 보육교사인 정혜연(가명)씨에게 고스란히 목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고는 없었다.
한 달에 100번 가까운 학대가 이뤄질 동안 정씨가 이 같은 사실을 원장에게 알리거나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땠을까.
김 관장은 “정부가 발간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 및 대응 매뉴얼에는 어린이집 원장이 수시로 원아들과 교사들을 모니터링하고, 보육교사는 다른 교사가 하는 행동이 학대 행위로 보이거나 의심되면 즉시 원장에게 알리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며 “이들이 매뉴얼을 숙지하고 지켰다면 3개월이나 이어진 학대는 초반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매뉴얼 위반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의 학대 사건마다 보이는 문제기도 하다.
군포시의 한 유치원에서 2022년 보육교사가 3~4세 아이 7명을 24차례에 걸쳐 학대한 사건에서도 보름 남짓 반복된 학대는 부모의 신고가 있기 전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김 관장은 “보육시설에서 생기는 학대 사건의 가장 많은 케이스인데, 현재 필수가 아닌 보조교사를 확대해 1인당 돌보는 아이 수를 줄이고 감시자의 역할을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과 같은 저출생시대에 정부가 아이들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보육교사 지원 등에 아낌없는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10건 중 8건이 집에서 발생하는데…매뉴얼 전무
경기도내 아동학대 10건 중 8건 이상이 가정 내에서, 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있지만 정작 부모나 일반 대중에게 학대에 대해 교육할 시스템과 매뉴얼은 전무하다.
2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022년 경기도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7천845건 중 85.3%인 6천695건이 가정에서 발생했다. 이어 △교육기관 686건(8.7%) △숙박업소·종교시설·기타 138건(1.8%) △사례관리대상자(보호자·성인) 가정 137건(1.8%) △친인척 또는 이웃의 집 134건(1.7%) △병원 또는 복지시설 55건(0.7%)으로 나타났다.
학대 행위자는 부모가 6천557건으로 83.6%를 차지했으며 대리양육자가 825건(10.5%), 친인척이 230건(2.9%), 타인 140건(1.8%), 기타 93건(1.2%)으로 확인됐다.
특히 아동학대 피해 아동 10명 중 9명은 원가정으로 돌아가고 있다.
7천845건의 아동학대 중 7천120건(90.7%)은 학대 후 원가정으로 돌아갔고, 분리보호는 674건(8.6%)에 그쳤다.
대부분의 피해 아동들이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만큼 재학대 역시 1천334건에 달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부모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아동학대에 대해 명확히 교육하거나 알릴 수 있는 매뉴얼은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마련된 정부의 아동학대 관련 매뉴얼은 지난해 3월31일 발간한 ‘2023 아동학대 예방 및 대처 요령’, 2021년 9월 발행된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 및 대응 매뉴얼’, 2016년 4월18일 마련된 ‘유치원·어린이집 아동학대 조기발견 및 관리·대응 매뉴얼’, ‘아동학대 징후를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뿐이다.
이들 모두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가 직무 중 학대로 의심되는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아동학대 교육을 꼭 들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인데, 사회 전반의 합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아동학대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 등의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현재 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확대는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제언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국민 대상 교육 확대 필수”
전문가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좋은 부모 되기’,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빠되기’처럼 친근한 용어로 일상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며 “아동학대를 예방하려면 부모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를 방치하다 숨지게 한 학대 사건 등에서 보육시설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교육을 통해 모두가 아동학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박 교수는 중·고등학교나 대학 등에서 아동학대 관련 교육을 아이들 맞춤으로 진행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전입신고를 할 때 교육을 받게 하거나 문화센터나 주민센터처럼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곳에서 양육과 관련한 각종 지원, 지식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박 교수는 아동학대의 경우 사후 관리가 아닌 사전 관리를 통한 ‘예방’에 초점을 맞춰 촘촘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동학대라는 것은 발생한 뒤에는 없었던 일이 될 수 없고, 아이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며 “공적 시스템에 신고가 돼 사례관리를 받게 되는 순간 아이의 삶에 큰 고통이 생기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아동학대는 발생 위험 요인들의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동학대 발생 위험 가정들을 조기에 발굴해야 한다”며 “위험이 있는 가정들이 지역사회의 지원이나 각종 서비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학대 위험요인을 제거할 수 있도록 조기 발견 자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박 교수는 아동학대 관련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고 했다. 홍보를 통한 교육이 확대돼야 하는 이유 역시 같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들에게 적극적인 서비스나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러한 교육이나 정보가 제공되는 시스템,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각적인 방면에서 촘촘한 체계가 갖춰진다면 아동학대는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이대현 기자 lida@kyeonggi.com
박소민 기자 so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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