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만큼 가격도 '껑충'…"정당한가, 탐욕인가"

전다윗 2024. 8.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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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적에도 식품·외식업계 '도미노 인상' 이어져
소비자 단체 중심 '그리드 플레이션' 지적 나와
일각에선 '역풍' 우려…"美선 소비자 외면 부딪혀"

[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연이은 호실적에 '도미노 가격 인상'에 들어간 식품·외식업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업계는 내수 부진을 해외 시장에서 만회했을 뿐 여러 이유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들은 '실적 잔치'를 벌이는 상황에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건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의한 물가 상승)'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일각에선 가격 인상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을 경우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토마토 케첩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22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뚜기 등 주요 기업들이 제품가격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오뚜기는 오는 30일부터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카레, 케첩, 소스 등 5개 품목 24종의 가격을 7~15% 인상한다. 3분카레, 3분짜장, 스파게티 소스, 후추 등 4개 품목 10종의 가격 편의점 가격도 내달 1일부터 올린다. 앞서 오뚜기는 지난해 12월부터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물가 안정에 동참해 달라는 정부 압박에 못 이겨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이번 오뚜기의 가격 인상으로 식품업계의 도미노 가격 인상 행렬은 더 빨라질 전망이다. 이미 업계 1위 CJ제일제당을 포함해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동원, 샘표, 청정원 등 주요 업체들이 김, 초콜릿, 음료, 소스 등의 가격을 올린 상태다.

외식 물가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 1위 스타벅스는 지난 2일부터 그란데(473㎖), 벤티(591㎖) 사이즈 가격을 각각 300원, 600원 올렸다. 스타벅스의 가격 조정은 2022년 1월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롯데리아는 지난 8일부터 버거류 20종 가격을 평균 2.2%, 맥도날드는 지난 5월 16개 메뉴 가격을 평균 2.8% 인상했다.

이 같은 가격 인상은 국제 또는 국내의 원재료 가격 인상이라는 요인에 근거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기업의 실적이 대부분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14조4546억원, 영업이익은 27.1% 늘어난 7595억원이다. 대상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2조987억원, 영업이익은 57.3% 증가한 921억원으로 집계됐다.

롯데웰푸드는 상반기 매출 1조99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0.2%) 감소했으나, 영업이익은 1006억원으로 49.7% 증가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상반기 역대 최초로 매출 2조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970억원)도 전년 동기 대비 18.1% 늘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수익성 향상과 함께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 매출(1조4943억원)을 올렸고,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62.8% 증가한 231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업체들은 실적을 뜯어 보면 부진한 내수를 수출이 견인하는 구조일 뿐, 이전부터 소비 침체와 원가 폭등 등 가격 인상 요인을 감내해 왔다고 항변한다.

미국 맥도날드가 지난 6월부터 판매 중인 초저가 세트 '5달러 메뉴'. [사진=맥도날드 홈페이지]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이 고물가 분위기를 틈타 과도하게 가격을 올려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그리드플레이션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눈에 띄는 호실적을 기록하는 가운데, 원가 상승 등 가격 인상 요인에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서에서 "식품사들이 원재료와 환율이 하락하던 긴 기간 동안 소비자 가격 인하 없이 이익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원재료 및 가격 상승 원인이 생길 때마다 곧바로 가격 인상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여러 원가 상승 요인으로 인해 기업들이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단기간의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부 전가할 경우 소비 침체로 이어져 모두에게 해가 되는 악순환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가격 결정에 더 신중한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물가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단행한 가격 인상이 장기적으로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소비자들이 업체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을 비판하며 지갑을 닫는 분위기다. 결국 버거킹, KFC, 웬디스, 맥도날드, 타코벨 등 주요 외식업체들은 소비자 마음을 돌리기 위해 '초저가 메뉴'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월마트는 지난 4월 식료품 할인 품목 규모를 전년 동기 대비 45% 늘렸다. 월마트에 이은 미 2위 소매업체인 타깃은 올해 여름부터 5000개 품목의 가격을 내렸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만성 인플레이션에 고생하던 미국 소비자들은 최근 잦은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기업을 집단으로 보이콧하며 대응하고 있다"며 "국내 소비자들은 이에 비해 다소 얌전한 편이다. 가격을 올려도 기껏해야 정부에 비난의 목소리를 낼뿐 기업들을 타깃하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점점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편해지고 있다. 언젠가 미국처럼 소비자들이 의견을 모아 집단으로 행동하는 상황을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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