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증명되지 못한 가난의 비극

경기일보 2024. 8.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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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후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초연금에 의지해 살던 이들은 26만원의 체납 전기료를 낼 수 없어 곧 전기가 끊길 예정이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더운 여름, 곰팡이가 핀 쪽방에 앉아 전기료 무서워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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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수 인천고령사회대응센터 시니어연구팀부연구위원

얼마 전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후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초연금에 의지해 살던 이들은 26만원의 체납 전기료를 낼 수 없어 곧 전기가 끊길 예정이었다. 어디가 부서진 것인지 두 달 치 수도요금이 90만 원이나 나오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러 나온 수도사업소 직원이 모자의 죽음을 발견하게 됐다.

벽이 갈라지고 집 안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부서진 모습들만 가득하다. 지병이 있던 아들이 먼저 숨지고 하반신이 마비돼 돌봄을 받지 못한 어머니가 뒤이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 모두 수입이 없었지만 그들이 살던 집은 외관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기준 공시지가인 1억2천만원을 훌쩍 넘긴 1억7천만원이었기 때문에 의료비 지원이나 주거비 지원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그들이 살던 집은 85년이나 돼 낡고 작았으며 비가 새고 벽이 무너져 팔릴 것 같은 희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서 살던 모자는 자신들의 가난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 고통스럽고 외롭게 사망하고 만 것이다. 뉴스는 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숫자가 아니라 관심과 돌봄이었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관심과 돌봄’은 어떤 것이었을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면 모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루 한 번씩 도시락이 배달되고 긴급복지 지원이 이뤄졌다면 두 사람은 건강하게 살아 있을까. 주거비 지원이 이뤄졌다면 주저앉은 개수대를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이들의 쓰러져가는 집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고칠 수 있었을까. 돌봄 인력이 정기적으로 방문했다면 설거지를 하지 못해 비닐봉지를 씌워 사용하던 그릇들을 설거지해 줬을까. 의료비 지원을 통해 아픈 아들이 하반신 마비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닐 수 있었을까.

이 비극적인 기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언제쯤이면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의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관심과 돌봄을 친인척이나 이웃의 일로 치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올까. 어떤 제도와 정책이 엉성하기만 한 사회적 안전망을 물 샐 틈 없는 단단한 안전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더운 여름, 곰팡이가 핀 쪽방에 앉아 전기료 무서워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여름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전기장판도 켜지 못하고 일곱 겹 옷과 오래 빨지 못한 이불들을 겹겹이 덮고 겨울을 나게 될 이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친다. 더위와 추위를 이기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증명된 가난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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