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와 20년 인연 오바마 “미국엔 새 챔피언 필요”

시카고/김은중 특파원 2024. 8. 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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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대 둘째 날 지지 연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0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열광하는 청중에게 손짓으로 화답하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그녀는 할 수 있습니다(Yes, she can)”라는 말로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AFP 연합뉴스

“소리만 지르지 말고 투표합시다. 그녀는 할 수 있습니다(Yes, she can)!” 20일 일리노이주(州)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건 시카고가 정치적 고향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시카고가 진짜 고향인 배우자 미셸 오바마 여사였다.

백악관을 떠난 지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는 오바마 부부는 녹슬지 않은 유려한 연설로 약 1시간 동안 현장에 모인 약 5만명의 청중을 휘어잡았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오바마는 이날 ‘사상 첫 흑인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호소하며 16년 전 자신의 대선 슬로건 ‘예스 위 캔(우리는 할 수 있다)’을 소환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 혁혁하게 기여했던 이 문구를 해리스에게 맞춰 “예스 쉬 캔”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오바마는 이날 “미국은 지금 새로운 챔피언,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며 “해리스는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평생 싸워온 사람”이라고 했다. “돈, 명예, 지위, 좋아요처럼 영속성이 없는 것들에 프리미엄(가치)을 부과하는 시대에 순진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진짜 중요한 건 정직함, 진실성, 친절함, 노력 같은 것들”이라며 “해리스가 이런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우리가 세상의 모든 불의를 소탕하는 경찰이 될 수는 없지만 미국이 자유·인권 같은 가치를 받들 때 세상은 밝아졌고, 그러지 못했을 때 세상이 어두워져 독재자들이 기고만장해졌다”며 “우리가 이 세상의 선한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바마는 재선 도전을 포기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선 “나의 형제이자 친구”라며 “16년 전 그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내 인생이 최고의 결정이었음이 입증됐다”고 했다. 이어 “역사는 바이든을 위험한 순간 민주주의를 지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횃불은 넘겨졌고, 우리가 믿는 미국을 위해 싸우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라고 했다. 미셸 여사는 “가만히 앉아 불평만 하지 말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이번 대선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고 우리 운명이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며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6월 바이든이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 토론에서 참패한 뒤 민주당 진영에 대선 패배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 바이든의 ‘대타’로 거론되기도 했던 미셸은 “이 안에서 밝은 내일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희망’이란 단어도 16년 전 남편 오바마가 첫 흑인 대통령에 도전하며 반복해서 강조했던 말이다.

부부는 트럼프를 향해서 날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바마는 “우리는 이전에 그 영화를 본 적이 있고, 영화는 보통 속편이 더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 2기’를 ‘형편없는 속편’에 빗댔다. 이어 “늘 본인 문제를 갖고 징징거리는 78세 억만장자 트럼프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밤잠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또 “오로지 본인의 이해와 부자 친구들을 위해 대통령을 이용하려고 하고, 세상을 ‘제로섬게임’으로 본다”며 “이웃으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되기에는 위험하다”고 했다. 미셸도 ‘트럼프 때리기’를 거들었다.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는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이 그저 ‘흑인 일자리(black job)’ 중 하나라는 걸 보여주자”고 했는데, ‘흑인 일자리’는 지난달 트럼프가 흑인 기자협회 행사에서 언급해 논란을 부른 말이다. 당시 트럼프는 “국경을 넘어온 수백만명의 이민자가 흑인 일자리를 뺏고 있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했다. 그런데 ‘흑인 일자리’라는 표현을 통해 흑인이 종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한 것으로 해석돼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다.

오바마와 해리스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가 캘리포니아에서 주최한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당시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이었던 해리스가 도와준 것이 시작이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정치인, 혼혈 가정 출신, 부모의 이혼 경험, 법조인 경력 등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이 빠르게 가까워져 동지적 관계를 이어왔다”고 했다. 해리스는 2008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대세론 속에서도 오바마를 지지했고, 오바마는 돌풍을 일으키며 당 경선과 대선에서 모두 이겼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 오바마를 두 번이나 당선시킨 참모들이 대거 해리스 캠프에 합류한 상태다.

이날 해리스의 배우자로 미국 역사상 첫 ‘퍼스트 젠틀맨’에 도전하는 더글러스 엠호프도 연단에 올라 “카멀라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다가온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며 “그건 지금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카멀라는 정의를 추구하며 희열을 느끼고, 여러분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가장 분노하며, 특유의 유쾌함과 강인함으로 국정을 이끌 전사”라며 “내가 해리스를 만나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졌듯이 미국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엠호프는 22일이 부부의 10번째 결혼기념일이란 사실도 밝혔는데, 해리스는 이날 대선 후보 수락 연설로 전당대회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한편 해리스는 이날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행사장인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파이서브포럼에서 유세를 했다. 시카고 행사장 전광판에 화상으로 등장한 해리스는 “여러분의 후보가 될 수 있어 매우 영광”이라며 “이번 캠페인은 국민이 국민의 힘으로 주도하는 것이고, 우리가 함께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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