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전기료 포퓰리즘’… 전문가는 “요금 올려야”

조재희 기자 2024. 8. 2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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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與野 서로 “전기료 감면”
이번 달엔 얼마 나왔을까 - 21일 오후 대전 서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주민이 우편함에 꽂혀 있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여야가 취약 계층의 전기료 감면에 합의하는 등 한목소리로 에너지 요금 감면 정책을 추진하지만, 이런 정치권의 움직임이 자칫 전기 요금 인상 억제로 이어져 전력 산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현종 기자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권이 취약 계층 전기 요금 감면 지원책 등을 내놓으며 민심 잡기에 나섰다. 지난 5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전기료 감면법’을 민생법안으로 협의하자고 야당에 제안했고, 야당도 “그럽시다”라며 화답했다. 여권에서는 취약 계층의 전기 요금 부담을 사실상 없애겠다는 방안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요금 누르기’로 만신창이가 된 한국전력이 최악의 재무 위기에 빠진 현실에서 정치권이 송배전망 구축을 위한 전력망 특별법과 같이 우리 전력 산업의 문제를 해결할 입법은 등한시한 채 ‘요금’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올 들어 반년(1~6월) 동안 한전과 자회사가 이자를 갚는 데 쓴 돈은 2조2841억원에 이른다. 하루로 따지면 126억원, 한 달이면 3800억원을 이자 상환에 썼다.

인공지능(AI) 확산 등에 따라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현실에서 요금 인상을 통해 한전의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 산업 전반에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전의 송배전망 구축이 차질을 빚으며 수요처에 전기를 제때 공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빚더미에 앉은 한전을 그대로 두는 건 결국 우리와 다음 세대의 부담이 될 뿐”이라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전기 요금 인상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전 위기에도 요금 인상은 지지부진

21일 한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한전의 부채 규모는 203조원에 이른다. 불과 2년 반 전인 2021년 말(146조원)과 비교하면 40%가량 급증한 규모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해도 전기 요금은 안 오른다’며 취임 이후 전기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의 재무 구조는 급격하게 부실해졌다. 2021년 하반기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전기 요금 인상을 대선 이후인 2022년 4월로 미뤘고 그 여파는 계속됐다.

판매 가격이 원가에 못 미치는 역(逆)마진 구조가 이어지면서 2021년부터 조(兆) 단위 적자가 이어졌고,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규모는 급증했다. 2020년 4조원 수준이던 연간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21년엔 12조원, 2022년엔 37조원까지 늘었다. 이 과정에서 부채 규모는 지난해 200조원을 넘어섰다.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며 2022년 하반기 두 차례에 이어 작년 1월에도 요금을 올렸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마저도 작년 5월을 끝으로 가정용 전기 요금 인상은 1년 3개월 동안 없었다. 올 4월 총선 등 정치 일정이 이어지며 작년 11월 산업용 요금만 한 자릿수 올렸을 뿐이다. 이후에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와 여름철 냉방 수요 성수기를 앞두고 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 인상은 무산됐다.

◇미래 대비는 꿈도 못 꾸는 한전

전기차 보급, 데이터센터 확산 등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전기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발전소 건설과 송배전망 구축 등이 시급하지만 이를 주도할 한전이 최악의 재무 위기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면서 제때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이후 한전이 건설한 송배전망 길이는 계획 대비 25% 수준에 그친다.

특히 올여름 폭염이 이어지며 다음 달 중순 이후 나올 8월 전기료 고지서가 ‘냉방비 폭탄’으로 비화할 경우 향후 요금 인상을 더 어렵게 하며 한전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이 “하반기 전기 요금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소비자들이 전기 요금을 세금으로 인식하다 보니 표에 민감한 정치권은 무작정 누르려고만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전의 재무 구조는 악화하고, 전력 산업에 대한 투자는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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