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그 교수의 논문이 뒤로 밀린 이유
‘중독의 대모’라 불리는 조현섭 총신대 중독상담학과 교수가 두 달 전 그리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보고서를 냈다가 ‘빠꾸’당했다. 두 편인데, 알코올중독에 관한 건 바로 주요 주제로 선정됐다.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건 후순위로 밀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을 제외한 미주·유럽에선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이 알코올·마약만큼 심각하지 않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 남부 소도시에서 연수받는 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매주 방과 후 축구 교실에 갔는데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와 부모 누구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경기에 집중했다. 간혹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는 사람이 있어 누군가 보면 십중팔구 한국인이었다. 미 현지인들도 스마트폰을 살뜰히 활용한다. 운전할 땐 내비게이션을 켜고, 식당 고를 땐 방문자 평점을 참고한다. 그런데 그때뿐이다. 그 외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어딘가에 넣어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를 해보니 국내에서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잠재위험군 포함)은 약 840만명인 걸로 나타났다. 청소년 40%는 스마트폰 과의존이다. 영유아 중독 비율(25%)은 성인(22.7%)을 능가한다. 소위 4대 중독이라 불리는 알코올·도박·마약·스마트폰 중독자들을 모두 더하면 1250만명에 달한다. 4명 중 1명꼴이다. 조현섭 교수는 “치료가 필요한 중독 유병률 또한 해외는 1~2%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5~6%에 달한다”며 “한국은 중독 공화국”이라 했다.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박 중독 유병률(6%)은 카지노 도시인 라스베이거스(4.1%)보다 높다.
아이들의 경우 대개 공공장소에서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쥐여주면서 중독이 시작된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가 “유독 중독에 취약한 사회”라고도 했다. 대표적인 게 도박이다. 경륜·경정이 국내에선 합법 사행산업이고, 스크린을 보며 베팅하는 장외 매장도 전국 100곳이다. 민속 ‘소싸움 경기’가 갬블산업으로 재탄생한 곳도 한국이다.
도박과 스마트폰은 중독에 빠지는 기저가 비슷하다. 반복할수록 내성이 생기고 동일한 효과를 보려면 양적 증가가 필수다. 스마트폰은 특히 손에 쥐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어 중독에 가장 무르다. 어릴수록 부작용이 커서 심하면 감정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13세 미만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도 뒤늦게 제어 장치 마련에 착수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청소년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법률안 개정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스마트폰 중독 기운을 뺏기는 힘들다. 제 몸도 못 가누는 한두 살짜리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건네주는 우리네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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