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29] 응원이 필요한 그대에게 ‘빅토리’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 영화가 있다. 박범수 감독의 ‘빅토리’가 그러하다. 1984년 거제고등학교에서 결성된 여학생 치어리딩 팀 ‘새빛들’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1999년을 시대 배경으로 삼고 있다. 세기말적인 감성을 드러내며 관객들을 저마다의 추억에 잠기게 한다.
마냥 춤추기를 좋아하는 필선(이혜리 분)과 미나(박세완 분)는 서울에서 전학 온 세현(조아람 분)과 함께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를 결성한다. 표면적으로는 고등학교 축구부를 응원하기 위해서라지만 필선과 미나에게는 춤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힙합처럼 자유로운 춤을 추구하는 필선은 정해진 동작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치어리딩에 거부감을 느낀다. 규칙의 준수와 일탈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데, 필선은 동아리 친구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그 거리를 좁혀가며 성장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레트로 감성을 물씬 풍긴다. 이를테면 VHS 캠코더로 연출하는 몇몇 영상은 1990년대의 예스러운 질감으로 아련함마저 자아내 괜스레 뭉클하게 한다. 또한 이 시기를 대표하는 대중가요로 이를 강화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시작으로 김원준의 ‘쇼’, NRG의 ‘할 수 있어’, 디바의 ‘왜 불러’, 터보의 ‘트위스트 킹’, 듀스의 ‘나를 돌아봐’, 윤수일의 ‘황홀한 고백’, 지니의 ‘뭐야 이건’이 적절한 장면에 등장하여 경쾌하고 신나는 분위기를 이끈다.
그런가 하면 조성모의 발라드 ‘아시나요’는 필선을 향한 치형(이정하 분)의 순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낭만적 정서를 고조시킨다. 특히 영화의 주제가 격인 ‘쇼’가 자주 등장하는데, “Show, rule은 없는 거야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난 할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라는 노랫말처럼 그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규칙이야말로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에서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1999년은 여러모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해였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극도로 침체했다. 세기말 현상으로 종말론이 판을 치며 허무와 체념이 사회에 만연했다. 그런 중에도 누군가는 꿈을 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화는 비록 초짜여도 춤을 향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결국 이 영화는 젊은 날의 우리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가인 셈이다.
무척이나 길고도 더워 유독 힘든 여름이다. 그래서 격려와 응원이 더욱 필요하다. 어쩌면 삶은 따로 또 같이 추는 춤인지도 모른다. 곧 가을이 오리니 그때까지 조금만 더 힘내기로 한다. “고개 들고 가슴 펴고”라는 영화 대사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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