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0.03%’의 난제, 음주운전

임현서 변호사 2024. 8. 2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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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지난 5월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가수 김호중은 경찰에 “술잔은 입에 댔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주 측정을 곤란하게 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를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약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음주 운전 혐의를 받고 있던 유명 아이돌 밴드의 멤버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던 사건이 다시금 오르내렸다. 모두 상식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해명이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하지 않았다.” 이른바 ‘음주 망언’으로 자리 잡은 몰지각하고 부적절해 보이는 발언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법리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로교통법은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중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인 사람’만을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유명인들의 음주 운전 사고와 구설로 인해 지금은 잘 알려진 방법이 되었지만, 과거에 음주 운전을 하다 단독 사고를 일으키면 차를 버리고 도망을 가는 건 아는 사람들만 아는 ‘면피 방법’이었다. 일례로 수년 전 한 연예인이 차량을 운전하다 신호등을 들이받은 후 꼬박 하루간 잠적하고 경찰에 출두했는데, 검찰은 대법원에까지 상고하며 의욕적으로 음주 운전 혐의를 입증하려고 했지만 끝내 혐의를 인정받지 못했다.

위 사건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안 했다’라고 주장한 사건의 전형인데, 검찰이 음주 운전 유죄를 주장했던 근거가 빈약하지만은 않았다. 피고인에게 “소주 2병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담당 의사의 진술과 의료 기록, 우회전하면서 좌회전 방향지시등을 켠 이상 행동, 술을 마신 후 대리운전을 요청한 행위, 사고 후 신고하지 않고 경찰관의 질문에도 운전 사실을 숨긴 행위 등이 검찰이 피고인이 음주 운전을 했다고 주장한 근거였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라는 대원칙은 위와 같이 현장에서의 음주 측정이나 채혈을 통한 혈중알코올농도 채증이 불가능한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준다.

법률이 정한 음주 수치를 입증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 공식 적용을 위한 자료로 섭취한 알코올의 양, 음주 시각, 체중 등이 필요하므로 그런 전제 사실이 엄격히 증명되어야 한다. 피검사자의 체질 등 다양한 요소가 혈중알코올의 감소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평균적인 수치를 적용해서도 안 된다. 그나마도 공식에 의해 산출한 혈중알코올농도가 법률의 기준을 근소하게 초과하는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사실상 유죄를 인정받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술을 마시고 운전한 뒤 홀로 사고를 냈다면 일단 차를 버리고 도망가거나, 심지어는 사후적 추정이 어렵도록 술을 더 마시는 이른바 ‘술타기’ 수법까지도 널리 쓰이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이 역설적으로 음주 운전자들에게 괴상한 행동을 할 유인을 제공하게 된 제도적 악용 현상의 전형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선고한 판결에서도 형사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의도적인 추가 음주를 하는 행위가 드물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으며, ‘의도적인 법질서 교란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국민적 공감대의 눈높이에 맞는 입법이 이루어져 ‘음주 운전 꼼수’가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인지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현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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