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이용마 기자 5주기, 광화문 앞 시민 1000여명 "힘내라 공영방송"
[현장] '힘내라 공영방송, 지키자 MBC' 시민문화제, 거리로 나온 시민들
"집에서 울화통 터져 못 참아"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어"
고 이용마 기자 5주기 추모 시간..."내가 이용마고, 우리 모두가 이용마"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질기고 독하고 당당했던 우리 싸움, 이정도에서 마무리 짓고 이제 국민의 품으로 자랑스럽게 돌아가도록 합시다.” (고 이용마 MBC 기자)
투병 중에도 공영방송 독립성을 강조했던 고 이용마 기자 5주기, '힘내라 공영방송, 지키자 MBC' 시민문화제가 21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렸다. 90여 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주최한 이날 시민문화제는 고 이용마 기자의 유지를 받아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주최측 추산 1000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문화제에선 이용마 기자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이 마련됐다. 2012년 MBC 파업을 이유로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1·2심에서 부당해고를 인정 받았지만 사측 불복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다 2016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목소리를 내던 그는 해고 5년9개월 만인 2017년 12월 복직이 결정됐지만, 2019년 8월 별세했다.
문화제에 자리한 이용마 기자의 배우자 김수영씨는 “주인이 없는 MBC는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알려주고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며 “이용마 기자는 그런 MBC를 좋아했고, 지키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그는 “기자, PD들이 행복한 일터에서 웃으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싶다”며 “이용마 기자도 바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고인과 제9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집행부를 맡았던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은 파업 당시 이용마 기자에게 '공정'이 무엇인지 물었던 일화를 전했다. 그는 “그때 이용마 기자는 '계급장 떼고 서로 맞붙어 얘기하는 것, 밑에 있는 사람들도 옳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고 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계속 싸워나가는 것'이라 말했다”며 “2017년 탄핵의 열풍 속 이용마 기자는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사장을 뽑을 수 있는 권리를 돌려주자고 말했다. 공정방송을 지키는 건 결국 모든 시민들의 집단 지성에 무한 신뢰를 보내는 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도 “공영방송 MBC 구성원들에게 보내주시는 과분한 신뢰와 지지를 잊지 않겠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마지막 꿈으로 삼았던 고 이용마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MBC 구성원들이 되겠다”며 “그가 목숨을 걸고 내걸었던 가치를 잊지 않고 MBC를 반드시 지켜내겠다. 시민 여러분이 함께 지켜달라”고 말했다.
문화제에 모인 시민들을 보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보게 된다”고 말한 이 본부장은 “공영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공영방송을 구해내고 지켜내는 길”이라고 외쳤다. 이어 “지금 법원에서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명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상식, 정의가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재판부가 보여주시길 간곡히 호소한다”며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안하무인 정권에 재판부가 경종을 울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 “집에서 울화통 터져 못 참아”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어”
이날 문화제 에 참여한 시민들은 '답답해서',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어서' 거리로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이었나 자발적이었나 묻는 질문에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에 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방송통신위원장 청문회와 과방위에서 나온 이진숙 위원장의 발언을 모은 영상이 재생되자 좌중 곳곳에선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60대 김아무개씨는 “집에서 보고만 있기 너무 답답해서 나왔다”며 “윤석열 정권이 조금만 비판하면 '입틀막'하고 방송을 장악하려고 하니 집에서 너무 울화통이 터져서 못 참겠다. 여기에 와서 푸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60대 염윤숙씨도 “KBS도 그렇고 지금 방송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MBC가 정확한 보도를 해주기 때문에 MBC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40대 한아름씨는 “이진숙 위원장처럼 말도 안되는 사람이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이 이런 사람을 계속 추천하고 임명하는 상황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국민이 알고있다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암묵적 동의가 된다. 이건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인 고 유연주씨 아버지 유형우씨(10·29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부운영위원장)도 이날 문화제 발언에 나섰다. 유씨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윤 대통령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적으로 논평한) '김혜영의 뉴스공감'에 주의 제재를 했다. 김 아나운서가 분향소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다”며 “그 모습을 보며 제가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왜 참사 희생자 가족이 김 아나운서를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현실일까”라고 물었다.
유씨는 “실제 정부는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직접적 사과, 브리핑 한 번 없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 뿐이었다”며 “정부는 국민의 입을 막았고, 눈과 귀도 막으려는 시도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조사와 진상 규명을 통해 혐오가 난무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TBS 예산은 8월에 끝나고, 아직까지 그곳엔 200여 명의 동료들 남아있어”
공영방송 구성원들과 관계자들은 윤석열 정권의 방송장악을 주장했다.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박선아 현 이사는 “방문진 이사들은 재임 기간 동안 대통령 선거의 승리에 도취한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과정에 맞서 싸우는 일에 더 집중해야 했다”며 “방통위의 새로운 이사 선임은 법적, 행정적 사항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 실현이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이사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 분명해 사법부에 엄격한 통제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발언을 시작하며 “오늘 국회에서 한 달간 출입정지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진숙 청문회에서 소리를 지르고 소란스럽게 했다는 이유다. 무척이나 억울했다. 소리를 크게 지른 건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이고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몸싸움까지 했는데 똑같이 한 달씩인가”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고 지부장은 “이렇게 윤석열 정권에서 하는 짓이 다 엉망진창이다. 어제는 뉴스를 양적으로만 늘리라는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YTN에 대규모 징계가 있었다”며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라는 표현을 무척 좋아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3249일 동안 싸워서 해직자 모두 복직시키고 공정방송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반드시 싸워서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저는 정말 지금과 같은 KBS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눈물도 닦아주는 공영방송이길 원했다”며 “제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KBS에서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만 하더라도 한 번도 어떠한 노조에도 가입해본 적 없던 후배가 가입서를 냈다”며 “시민 여러분들이 응원 보내주시면 저희는 안에서 열심히 싸우겠다”고 했다.
폐국 위기의 TBS를 떠나 오마이TV로 일터를 옮긴 최지은 앵커는 이날 문화제의 사회를 맡았다. 최 앵커는 “어느 순간부터 정부에 비판적인 얘기를 했다는 이유로 (TBS) 예산이 끊겼다. 저도 마지막까지 버티다 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저희에게 배정된 예산은 8월이면 끝나고 아직까지 그곳엔 200여 명의 제 동료들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송지연 언론노조 TBS지부장은 “최지은 아나운서를 보며 마음이 울컥하다. 정말 좋아했던 최지은 아나운서가 떠난다고 했을 때 속상하고 힘들었다”며 “지금 제가 가장 힘든 건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나 이제 100명이 나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 지부장은 “제가 제일 가슴 아프게 듣는 말은 'TBS는 망해도 싸다'라는 말”이라며 “많이 힘들지만 끝까지 버티고 TBS를 지켜내겠다. 34년 된 방송사가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외쳤다.
“내가 이용마고, 우리 모두가 이용마”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른 가수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도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그는 “(이진숙 방통위원장) 청문회를 보며 많이 답답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같이 말이 안 되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됐다”며 “투쟁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모두 지칠 수 있겠지만 힘내서 함께 가자”고 말했다.
권영길 언론노련 초대위원장,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이훈기·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재연 진보당 대표 등 언론계 인사들과 야당 정치인들도 문화제에 자리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영상을 통해 공영방송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날 문화제는 예정보다 한 시간 더 늦은 오후 9시30분께 마무리됐다. 문화제가 끝날 때즈음 발언에 나선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탄압이 질서가 된 이명박 정권, 자기를 불살라서 싸웠던 나의 동료는 이제 재가 됐다. 이제 제가 그 싸움을 받았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받아 안고 있다. 제가 이용마고 우리 모두가 이용마 아니겠나”라며 “여전히 숙제가 남아있고 우리는 또다시 거리에 나와 있다. 언론인의 외침, 시민들의 한결같은 요구를 이젠 법과 제도로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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