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오남용되는 AI, 그리고 지적 사기
그대로 복사해 붙이는 ‘가짜 논문’은 사기
연구 평가에 논문 편수보다 가치 따져야
어느 학문 분야 건, 인류가 그동안 쌓은 지식에 새로움을 더하는 일은 연구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며 그들에게는 삶의 목표다. 치열한 노력과 올곧은 정진으로 새로움을 완성했을 때 대부분의 학자는 그 연구 결과를 논문이라는 형태로 정리하며, 이는 해당 분야의 전문학술지를 통해 세상에 소개된다. 이러한 학술지는 전 세계에 3만 종 이상이 있으나, 그중에 5000개 정도만이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면 동료 학자들이 심사하여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데, 심사 결과는 게재 불가, 수정 보완 그리고 게재 승인의 세 가지다. 많은 경우 수정 보완이 요구되며 이를 반영해 논문을 다시 작성하면 출판까지 걸리는 기간은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 명성 높은 학술지일수록 게재 불가 판정이 당연히 많은데, 예를 들어 과학기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네이처’ 등은 최종 게재 승인이 전체 투고 논문의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논문 한 편에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때로는 눈물도 스며 있다. 치열한 연구 없이 보상만을 위해 논문을 표절하거나 가짜 논문을 만드는 행위는 당연히 학문 세계를 좀먹는 질 나쁜 범죄 행위다. 기여한 것 없이 논문 저자로 이름 올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 한 여학생이 고교 시절의 두어 주일 인턴으로 논문 제1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지극히 분노한 이유다.
연구자의 삶을 수련하는 대학원 과정도 대부분은 논문 작성으로 마감되는데, 이는 석박사 학위로 보상받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학위논문 표절 이슈는 결국 대학들이 심사를 엉터리로 했기 때문이다. 표절이 확인되면 대학은 즉각 학위를 취소하고 지도교수 및 심사를 맡았던 교수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인데, 아쉽게도 그런 이야기는 매우 듣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다. 논문 표절에 대해 대학은 철저하게 반성하며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학술지 게재 논문들은 연구자의 주요 업적으로 간주되고, 이는 통상 추후 연구비 획득 등의 보상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가치를 지닌 논문 한 편이 평범한 논문 100편보다 더 큰 성과라고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우리처럼 객관적이며 정량적인 평가를 신뢰하는 사회에서는 게재 논문의 숫자 자체가 업적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짧은 시간에 논문을 여러 편 써내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되며 이를 위해서는 최근 등장한 챗GPT가 최고의 협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챗GPT의 도움으로 연구 성과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은 전혀 막을 일이 아니다. 종이에 펜으로 논문을 작성하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워드프로세스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챗GPT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술 혁신이다. 그러나 논문 작성 시 단 하나의 문장에도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숙고(熟考)의 시간 없이, 챗GPT가 만들어 주는 것들을 그대로 복사해 붙이는 일은 그야말로 ‘지적 사기’다. 열 사람이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하듯, 아무리 심사를 까다롭게 해도 챗GPT를 이용한 가짜 논문은 꽤나 저명한 학술지에도 이미 다수 게재되고 있다.
‘지적 사기’는 30여 년 전 당시 뉴욕대의 물리학과 교수였던 앨런 소칼 등이 일부 인문사회과학 논문에서 자연과학적 개념을 확실한 이해 없이 적용해 터무니없는 결론을 도출하는 세태를 비판한 책의 제목이다. 그는 스스로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그리고 불확정성의 원리 등을 동원하면서 전혀 근거가 없는 가짜 논문을 작성했다. 본인의 표현으로는 문법적으로 정확하지만 아무런 뜻도 없는 문장들의 잡탕이었다. 논문은 ‘경계의 침범’이란 제목으로 미국의 유명 학술지인 ‘소셜 텍스트’에 성공적으로 게재되었고, 그 후 이에 관련된 진실이 담긴 ‘지적 사기’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소칼의 가짜 논문에는 오히려 엄청난 정성이 배어 있으며 이는 학계에 큰 영향을 준 긍정적인 것이었다. 이에 비해 챗GPT를 이용해 쉽게 만들어 내는 논문들은 대부분 종이만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일이다. 챗GPT의 도움을 받는 것은 좋지만, 논문 한 문장 한 문장에는 반드시 연구자들의 영혼이 녹아 있어야 한다.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다시 한 번 엄중하게 논문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 사회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 업적평가에서 논문 편수를 헤아리는 일은 이제 확실히 사라지면 좋겠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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