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안경 벗어요”···롯데 꺾은 KIA와 통산 최다 탈삼진 1인자 된 대투수의 물벼락 파티[스경x현장]
양현종(36·KIA)이 결국 KBO리그 탈삼진 역사의 맨 위로 올라섰다.
양현종은 2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7피안타(2홈런) 7탈삼진 4실점을 기록했다.
이날 잡은 7개의 삼진 중 3개째, 3회초 2사 1루에서 롯데 2번 타자 윤동희를 상대로 잡은 헛스윙 삼진은 양현종의 통산 2049개째 탈삼진이었다. 이 삼진으로 양현종은 송진우가 은퇴 시즌이었던 2009년 작성한 KBO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2048개)을 넘어섰다.
송진우의 이 탈삼진 기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2005년 은퇴한 기존 1위 이강철(1751개)의 기록을 300개 가까이 뛰어넘었다. 이후 이강철의 통산 2위 기록도 2022년 양현종이 경신하기 전까지는 10년 넘게 누구도 다가서지 못했다.
양현종은 송진우 외에는 누구도 근접조차 하지 못하던 2000탈삼진 기록을 지난 6월6일 달성한 뒤 약 두 달 만에 송진우를 결국 넘어섰다. 현재 2000탈삼진을 넘긴 투수 자체가 KBO리그 역사를 통틀어 양현종과 송진우뿐이다. 통산 3위 기록은 SSG 김광현(1849개)이 갖고 있다.
또한 양현종은 1회초 첫 탈삼진을 통해 시즌 100개째를 기록하면서 이강철, 장원준에 이어 역대 3번째로 10시즌 연속 100탈삼진의 대기록 역시 작성했다.
2007년 광주 동성고를 졸업하고 데뷔한 양현종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8개의 삼진을 잡고 투수 경력을 시작했다. 풀타임 선발로 첫 전환한 2009년 139개로 처음 100탈삼진을 넘겼고 본격적으로 ‘에이스 경력’이 시작된 2014년부터 올해까지 10년 연속 꼬박꼬박 100개 이상 탈삼진을 기록했다.
양현종은 지난해까지 KBO 최초로 9시즌 연속 170이닝 이상을 던졌고, 2022년까지는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거둬들인 꾸준한 에이스의 대명사다. 만 43세까지 던지고 은퇴한 레전드 중의 레전드 송진우의 탈삼진 기록을 만 36세에 넘어서면서 양현종은 KBO 투수 역사에 또 앞으로 쉽게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남겼다. 이날로 통산 2053탈삼진을 쌓은 양현종이 앞으로 삼진을 잡을 때마다 역대 1위 기록도 바뀐다.
양현종은 현재 통산 2471.1이닝을 던지고 177승을 거둬 통산 투구 이닝과 다승 부문에서도 송진우(3003이닝 210승)에 이어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9승에 머물러 8시즌 연속 이어왔던 두자릿승수 기록을 아쉽게 중단했던 양현종은 올해도 9승(3패)을 이미 거둬 다시 10승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록을 세운 이날 10승까지는 완성하지 못했다.
KIA 타선이 2회말 김선빈, 한준수, 박찬호의 적시 2루타로 3점을 먼저 뽑았으나 양현종은 5회초 1사후 롯데 8번 노진혁에게 우월 솔로홈런, 이후 2사 1·2루에서 3번 손호영에게 좌중월 3점 홈런을 내주면서 3-4로 역전을 허용했다. KIA 타선이 5회말 2사 3루에서 김선빈의 적시타로 4-4 동점을 만들었고 양현종은 69개를 던진 채 6회초 불펜에 공을 넘기며 승패 없이 5이닝에서 투구를 끝냈다.
양현종은 “언젠가는 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크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뜻깊은 기록으로 남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막 와닿지가 않는다”고 웃으며 “어릴 때는 나도 삼진을 많이 잡았지만 삼진에 대한 욕심은 그렇게 없다. 어릴 때 워낙 좋은 선배들(류현진, 윤석민 등)이 있었고 나도 은퇴 전까지는 탈삼진왕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야구하면서 ‘꼭 삼진 잡아야겠다’ 한 적은 없었다. 누적된 이닝이 많다보니 삼진도 따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록을 세웠지만 양현종은 일찍 마운드를 내려온 데 대한 아쉬움, 그래도 팀이 이겼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4회까지 쾌투를 하다 5회말 체인지업이 한복판으로 들어가면서 손호영에게 결정적인 3점 홈런을 맞고 동점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 홈런을 계기로 양현종은 투구 수에 비해 매우 일찍 마운드를 내려왔다.
양현종은 “코치님이 그만 던지자고 하셔서 두 번 버텨봤는데 워낙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그만 던졌다. 나 역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실투 하나에 너무 꽂혔다고 해야 하나. 코치님 판단하시기도 그렇고 6회에도 (손호영에게 홈런 맞은 체인지업) 그 공에 대한 여운이 계속 남을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다”며 “내가 선발 나갔을 때는 중간 투수들도 내가 이닝 많이 던질 거라 기대하고 있을텐데 오늘은 너무 일찍 내려와서 중간 투수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이길 수 잇는 발판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KIA는 양현종이 내려온 뒤 6회초 좌완 곽도규가 전준우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해 4-5로 역전당했으나 7회말 1사 2·3루에서 나성범의 희생플라이로 다시 동점을 만든 뒤 8회말 2사 3루에서 박찬호의 땅볼 타구를 잡으려던 롯데 3루수 손호영의 포구 실책으로 대주자 김규성이 결승 득점해 6-5로 승리했다.
이범호 KIA 감독은 “양현종이 걷는 길이 KBO리그의 역사다. 오늘 양현종의 투구 결과를 떠나 KBO리그 최다 탈삼진이라고 하는 대기록을 수립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최다승기록도 깨주길 기대한다”며 “장현식, 전상현, 정해영으로 이어지는 필승조가 상대타선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주면서 값진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지난주부터 마운드가 확실히 안정감을 찾은 모습이다. 지금의 모습을 시즌 끝날때까지 잘 유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수든 막내 투수든 KIA 투수 중 누군가 첫승, 첫 세이브는 물론 기념할만한 기록을 세울 때면 가장 먼저 나서 요란하게 물벼락을 쏟으며 축하해주던 양현종은 이날 그동안의 ‘업보’를 돌려받는 듯 후배들에게 대폭격을 맞았다. 제임스 네일까지 가세하고 후배들은 “형, 안경 벗어요”라며 만반의 준비를 시킨 뒤 격하게 KBO리그 탈삼진 1인자 등극을 축하해주었다.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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