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고 길게 쓴다” 떠나는 바이든의 인재 관리 성공 비결[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탈레반을 피해 미군 수송기에 매달린 아프간 주민들이 추락하는 아비규환이 벌어지면서 ‘지옥의 탈출’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전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최악의 외교 참사로 기록됐습니다.
‘cupboard’(컵보드)는 물건을 보관하는 장(欌)을 말합니다. 부엌에 있으면 찬장, 방에 있으면 장롱입니다. ‘bare’는 다 드러난 상태를 말합니다. 장이 드러났다는 것은 텅 빈 상태를 말합니다. 먹을 게 하나도 없을 때, 돈이 한 푼도 없을 때 쓰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정책 옵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한 이유는 외교안보팀 교체 요구가 거셌기 때문입니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아프간 탈출 작전을 수립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의 잘못이 아니라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아프간 정책에 문제가 있어서 혼란스러운 탈출밖에 옵션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It’s not just a single person turning over.”(한 사람 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지금도 백악관 외교 책임자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취임한 다른 고위 각료 20명도 아직 건재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Biden’s Cabinet has been remarkably stable.”(바이든 내각은 놀랍도록 안정됐다)
바이든 행정부 4년의 가장 큰 업적을 꼽으라면 정치적 편의나 세간의 평가에 따라 인사 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나이에 최고 리더 자리에 오른 자신처럼 인재를 오래 보고 쓰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특징입니다. 백악관 내각 회의에 참석하는 26명의 고위직 중 교체된 인사는 4명. 1년에 한 명꼴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가장 낮은 교체율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책의 연속성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turn over’는 원래 ‘뒤집다’ ‘제출하다’라는 뜻인데 요즘은 경제 용어로 더 많이 씁니다. ‘이직률’ ‘회전율’을 말합니다. 장관 한 명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He thought I’d be the hockey puck.”(그는 내가 하키 퍽인 줄 아는 모양이다)
미국 대통령은 인사에 신중할 뿐 아니라 떠나는 이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춥니다. 새로 오는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느라 가는 사람을 뒷전으로 밀지 않습니다. 백악관은 사임하는 각료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 명의의 감사 성명을 발표합니다. 단순한 노고 위로가 아니라 재임 중 성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내용이 깁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백악관으로 초청해 떠들썩한 미국식 사임 파티를 열어줍니다. 박수 받으며 떠나라는 것입니다. 위 구절은 마티 월시 노동장관 사임식 때 바이든 대통령의 농담입니다. 아이스하키 열혈 팬인 월시 장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노조 책임자로 일하기 위해 장관에서 물러났습니다. 하키 경기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퍽은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존재’를 말합니다. 함께 NHL로 데려가 달라는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한 월시 장관에게 자신은 퍽 같은 존재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엄살 개그입니다.
△“I like acting. It gives me more flexibility.”(나는 대행 체제가 좋다.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다른 대통령들이 1년에 1, 2명씩 바꾼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고위 참모를 4년 동안 20명 이상 교체했습니다. 장관만 14명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빠른 교체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앤서니 스캐러무치 백악관 공보국장은 취임 10일 만에 물러났습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트위터 해고에서 보듯이 교체 방법도 굴욕적이었습니다.
하도 자주 바꾸다 보니 직무대행 체제가 유행했습니다. 대행은 대통령이 임명하기만 하면 됩니다. 임기 말에는 백악관 비서실장, 국방장관, 유엔 주재 미국대사 등 17개 핵심 보직이 대행으로 채워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대행 선호 이유입니다. ‘acting prime minister’(총리 대행)처럼 ‘acting’은 직위 앞에 붙입니다. 대행이 편리할지는 몰라도 상원 인준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 실행력과 조직 통솔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미국 행정부의 인사 시스템은 한국과 크게 다릅니다. 학벌 파벌에 좌우되지 않고, 검증 과정이 치밀합니다.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4, 5년 이상 자리를 지키는 장수 장관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오래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국정 쇄신’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지나치게 자주 바꾸는 문화에서 보면 매우 부러운 풍경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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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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