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다리’ 날개 꺾였지만…9월엔 슈퍼태풍이냐, 유난한 가을장마냐
안심은 이르다…북태평양고기압이 관건
A. 올해 들어 처음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제9호 태풍 ‘종다리’는 다행히 일찍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전국에 많은 비를 뿌리긴 했지만 피해가 크진 않았습니다. 한데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태풍이 강해지는 가운데 지난해부터 발생한 엘니뇨로 지구 전체에 열에너지가 축적돼 있기 때문이죠. 올해 전 세계 바닷물 온도는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입니다. 이럴 때 만들어지는 태풍은 더 강력합니다. 게다가 최근 엘니뇨가 라니냐로 바뀌면서 태풍의 경로가 한반도를 향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가을엔 어느 때보다 강력한 태풍이 오거나, 태풍을 용케 피한다 해도 ‘역대급’ 가을장마가 올 가능성이 큽니다.
태풍은 북위 5도에서 20도 사이 북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합니다. 초속 17m 이상의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고 반경이 한반도 동서 폭을 넘는 500㎞에 달할 만큼 거대한 열대저압부를 이릅니다. 기상청의 ‘2023년 태풍 분석 보고서’를 보면, 매년 평균 3.1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많을 땐 2019년처럼 7개까지 늘어나기도 합니다. 한반도의 태풍은 7~8월에 65%가 집중되고 9~10월에 28%가 나타납니다.
통상 9월 태풍이 두렵다고 하는 이유는 해수 온도가 대기 기온보다 느리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오르기 시작한 해수 온도는 뒤늦은 9월에 정점을 찍습니다. 태풍은 해수면의 열에너지로 동력을 얻기에 그만큼 강력해지고 강수량도 많아집니다. 뜨거운 수증기를 머금은 태풍이 가을을 맞아 남하하는 찬 공기와 만나면 더 많은 비를 뿌립니다. 게다가 가을엔 한반도를 덮었던 북태평양고기압이 수축합니다. 고기압의 외곽을 따라 움직이는 태풍의 경로가 한반도 내륙을 향하게 되고, 피해가 더 커지게 됩니다.
실제 최악의 태풍으로 알려진 사라(1959년)와 매미(2003년)가 모두 9월 태풍들입니다. 재산 기준 1위인 5조1천억원의 피해를 낸 2002년의 루사도 8월30일~9월1일에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2년의 힌남노도 한반도 남부를 관통해 12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9월 태풍입니다.
올해 태풍이 더 우려되는 건 갈수록 심화하는 기후위기에다, 엘니뇨와 라니냐 상황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2년에서 7년의 불규칙한 주기로 태평양에서 나타나는 수온 변화 현상인데, 세계 곳곳의 날씨에 영향을 줍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엘니뇨로 지구 기온은 지난 7월까지 15개월째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죠. 해수면 온도도 그에 맞춰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고요. 지난해 21도를 처음 넘어선 세계 해수면 온도는 올 상반기 21.2도까지 올랐습니다. 열에너지가 축적된 상황에서 오는 태풍은 한층 더 강력해지게 됩니다.
엘니뇨 상황이었던 지난해 가을(9~11월)의 경우 발생한 태풍이 4개인데, 평년의 10.7개보다 적은데도 폭풍의 누적 에너지는 평년과 비슷했습니다. 그로 인해 태풍의 발생 빈도에 견줘 강도가 강한 태풍이 발생했고 태풍의 생존 시간도 길었습니다. 가을 태풍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7월28일에 발생해 한반도를 관통한 제6호 태풍 카눈의 경우 8월11일에야 열대저압부로 약화해 무려 14일 동안 길게 활동했죠.
전문가들도 강한 태풍과 가을장마에 대해 우려를 보였습니다.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학과)는 “최근 엘니뇨가 사라지고 라니냐가 정착되면서 서부 태평양 수온이 굉장히 높고 한국 연안 해역 수온은 적도 지역보다도 더 높아졌다”며 “라니냐로 인해 동풍이 강해지고 인도양 고기압이 소멸하면 서부 태평양에서 강한 태풍이 만들어지는 호조건이 된다. 태풍이 한반도로 올라오기도 쉬워진다”고 말했습니다. 강남영 경북대 교수(지리학과)는 “온난화가 작동한 상황에서 라니냐까지 겹쳐 태평양 서쪽이 더 따뜻해지면 대만과 남중국해 상에서 태풍이 발생할 수 있다. 이 태풍들이 한반도까지 오진 않더라도 많은 수증기를 한반도 쪽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9월엔 강한 태풍이 오거나, 태풍이 아니더라도 유난한 가을장마가 예상된다는 얘깁니다.
관건은 북태평양고기압입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서쪽 경계가 태풍과 비의 통로가 되는 터라, 이 경계가 어디쯤 위치할지가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지점입니다. 더는 예년과 같은 기상 재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기후변화 ‘쫌’ 아는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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