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한국 R&D 투자 대비 성과 부족…여성·외국 인력 늘려야”
R&D 투자 규모 크지만, 성과는 10년 간 정체
외국인에 문화적 장벽 높고, 여성 인력 홀대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가 한국이 많은 연구개발(R&D) 투자에도 불구하고 경쟁국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며 과학기술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네이처는 산업과 학계 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학생 수의 급격한 감소와 연구 인력 내 성별 불균형, 국제 연구자 유치 등이 한국의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네이처는 21일 공개한 ‘네이처 인덱스 2024 한국 특집호’에서 “한국은 R&D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강력한 혁신 역사를 바탕으로 네이처 인덱스 상위 국가 중에서도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며 “하지만 학생 등록 수의 감소, 연구 인력 내 성별 불균형, 연구 생태계 발전을 저해하는 문화적 요인 등으로 인해 한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네이처 인덱스는 자연과학과 의학 분야의 세계 상위 145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기관과 국가별 논문 수(count)와 공유 수(share)로 분석해 순위를 결정한다.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의 기여도를 분석해 기관과 국가별 논문 저자 비율을 토대로 순위를 매긴다. 네이처가 한국 특집을 발간한 건 1993년과 2020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네이처는 한국의 R&D 투자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R&D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에 달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호주 시드니맥쿼리대의 정치학자인 김성영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스스로 R&D에 능숙하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국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소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도 “윤석열 정부는 과학과 기술에서 다시 힘을 얻기 위해 정책, 제도, 자금 구조를 개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또다른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혁신 성과는 여러 면에서 정체되고 있다. 네이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2월 공개한 ‘2022년도 기술수준평가 결과’를 주목했다. 이 순위에서 한국은 2020년과 비교해 1위인 미국과의 격차를 좁혔지만,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 역전당했다.
네이처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네이처는 “연구 지출 대비 연구 성과가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며 “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효율성이 낮다는 건 한국이 직면한 여러 도전 과제와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자연과학 분야 학술지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19년 이후 거의 ‘ㅡ’자를 그리고 있다. 투자가 늘어나는 대로 논문 성과는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이다.
네이처는 한국 정부가 올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14.7% 삭감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선 것을 ‘지난 10년 동안 정체된 R&D를 재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틴 스타이네거(Martin Steinegger)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도 “예산 삭감이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더 많은 응용 프로젝트와 국제 연구 이니셔티브로 자금을 재분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연구재단에서 받는 보조금이 15~25% 정도 줄었지만, 다른 새로운 프로젝트에 신청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한국 정부가 글로벌 R&D 협력을 위한 예산을 2023년 5000억원에서 올해 1조 80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한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 전체 R&D 예산에서 국제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1.6%에서 6.8%로 늘었다”고 말했다. KAIST 교수인 동시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을 맡고 있는 차미영 교수도 “국제협력에 많은 돈이 배정됐고, 이로 인해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시도가 효과를 보려면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문화적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네이처는 한국의 여러 문화적 요인이 외국인 연구자의 정착을 어렵게 한다고 봤다.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종교적, 언어적,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세종대에서 컴퓨터 및 정보 보안을 연구하는 루이스 은케니예레(Lewis Nkenyereye)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언어 장벽과 행정적 문제로 적절한 허가 없이 체류하다 추방당하는 외국인 학생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북대학교에서 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무아즈 라자크씨는 대학 근처에 모스크를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지역 사회의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네이처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학생 수는 4배 증가했지만, 졸업 후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학생 비율은 2016년 40.9%에서 2021년 62%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많은 기관에서 한국어가 주요 수업 언어로 사용되는데 이는 외국인 연구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영어 사용 환경을 의무화하는 기관이나 기업은 드물다고 꼬집었다. 네이처는 “외국인 연구자가 직면하는 문화적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연구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 연구자를 더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네이처는 한국에서 가장 큰 공립 대학인 서울대를 예로 들었다. 서울대는 학부생 중 36%, 대학원생 중 49%가 여성이다. 하지만 정규직 교수 가운데 여성은 19.7%에 불과하다. 한국의 전체 연구 인력 중 23% 만이 여성인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네이처는 “연구 자금과 리더십에서 성별 불평등은 한국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4만9000명의 연구책임자(PI) 중 여성은 17.7%에 불과한데, 앞으로 10년 간 이 비율을 최소 두 배는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의 남성 PI(연구책임자)가 수주하는 평균 정부 연구비가 1억 6500만원인데 비해 여성 PI의 평균 정부 연구비는 6700만원으로 연구 자금 역시 불평등하다고 지적했다. 네이처는 “여성 연구자의 채용과 유지, 승진을 위한 정책과 이니셔티브를 시행하는 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네이처 인덱스는 한국의 연구기관 순위도 발표했다. 서울대가 1위를 차지했고, KAIST와 연세대, 성균관대, 포항공대(포스텍)가 2~5위까지를 기록했다. 기업 중에서는 삼성그룹이 12위로 가장 높았다.
참고 자료
Nature Index South Korea(2024), https://nature.com/collections/south-korea-index-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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