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기시다, 퇴임 앞두고 ‘치적’ 부각하러 한국 오나
과거사 양보 없이 관계 복원
외교적 성과 강조할 가능성
정부 ‘역사 인식’ 비판 커질 듯
윤석열 대통령과 퇴임을 앞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가 9월 초 한국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양국이 논의 중이다. 회담이 이뤄지면 한·일관계 발전과 한·미·일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과거사 양보 없이 한·일관계 복원을 이뤘다는 기시다 총리의 치적만 부각되고, 대일 역사 인식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여론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21일 기시다 총리가 방한 일정을 다음달 6~7일로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면서도 “윤 대통령은 언제든 기시다 총리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회담하면 그간 양국관계 개선 노력을 평가하고, 양국의 협력 의지를 재차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미·일 3국 간 공조 강화 메시지를 발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정상의 만남은 9월 말 퇴임하는 기시다 총리의 외교적 성과가 도드라지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지난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등을 주요 성과로 내세웠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관련해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제3자 변제안은 일본 기업의 참여 의무가 없어 일방적 양보란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지난 7월 말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으나, 일본이 조선인 노동자의 실상을 알리겠다며 설치한 전시물에는 강제라는 표현이 빠져 비판 여론이 형성돼 있다.
게다가 기시다 총리가 역사 인식과 관련해 아예 언급을 하지 않거나, 기존 태도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 총리는 그간 한·일 정상회담 때마다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직접적인 반성이나 사과의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한·일관계를 개선했다는 걸 최대 성과로 꼽는 상황에서 그 성과를 훼손하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최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등의 과거사 인식 문제와 맞물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발표하면서 일본을 향한 비판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또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과거사 문제에)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 발언 등이 논란이 되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가 기시다 총리 방한을 꺼릴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교도통신도 “사도광산 등재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동조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윤 대통령 측이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마이너스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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