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블랙 먼데이가 남긴 것
지난 8월5일 월요일, 글로벌 금융시장에는 기록적인 충격이 찾아왔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는데, 일본 엔화는 이례적인 강세를 보이면서 100엔당 965원 수준까지 치솟았고, 기록적인 강세를 이어가던 일본 주식시장은 하루에 12% 이상 폭락했다. 코스피지수 역시 하루에 6% 이상 급락하면서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서킷브레이커까지 걸리는 등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이에 언론에서는 이를 “블랙 먼데이”로 기록했다. 무엇이 이런 거대한 충격을 몰고 왔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를 주목하고 있다. 단어가 다소 생소한데, 가운데에 있는 캐리라는 표현은 채권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을 말한다. 채권 투자의 기본 중 하나는 저금리에 돈을 빌려 고금리에 투자하는 것이다. 일본은 초저금리 국가의 대표 격인데, 일본에서 끊임없이 저금리에 공급되는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 특히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한 미국과 같은 국가에 투자하면 상당한 금리의 차이를 이익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런 저금리인 엔화로 돈을 조달해 이자 차익을 얻기 위해 거래를 하는 것, 이를 엔 캐리 트레이드라고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다음의 환경에서 뚜렷해지는데 우선 차입을 하는 국가인 일본의 금리가 낮아야 한다. 다음으로 투자 대상 국가의 금리가 높아야 하는데 현재 기준금리가 5%를 넘는 미국은 엔 캐리 투자 대상으로 최적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투자 대상 국가가 강력한 성장을 이어가는 것이 좋은데, 미국은 예외주의(exceptionalism)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기에 최적의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작스레 엔 캐리 트레이드가 충격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의 성장 둔화 우려의 점증을 언급할 수 있다. 미국의 제조업 지표 및 고용 지표가 빠르게 식어가는 모습에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커졌고, 이에 미국 연준은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하게 된다. 반면 일본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제어하고자 시장의 예상을 깨고 강한 긴축 시그널을 보내는데 지난 7월31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게 된다. 일본과 미국의 금리차가 줄어들게 되고, 미국의 성장 매력이 줄어들기에 엔 캐리 트레이드에는 불리한 환경으로 빠르게 전환된 것이다.
이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흐르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되돌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해외 자산을 매각하고, 그렇게 받은 달러화를 팔고 엔화를 사서 일본으로 회귀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급격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2012년 이후 장기간 이어져왔던 엔 약세가 갑작스레 강세로 전환하게 되자,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 투자되었던 엔화 자금의 회귀 압력이 높아지는바, 지난 5일 금융시장은 종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이슈가 부각되면서 이른바 패닉에 빠졌던 것이다.
이런 급격한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일본은행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이어진다면 강한 긴축 기조를 중단할 것임을 언급하며 급한 불을 끄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발표된 미국의 소매판매 및 각종 서비스업 관련 지표가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를 다소나마 완화시켜주며 블랙 먼데이의 충격은 어느 정도 소강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그렇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는 쇼크는 이제 마무리된 것으로 봐야 할까? 엔 캐리 청산의 근본 원인인 미국의 성장 둔화, 그리고 일본의 인플레이션 압력 및 금리 인상이라는 대칭적인 상황은 여전히 유효하다. 블랙 먼데이의 강한 충격을 목도한 만큼 향후 금융시장은 미국의 성장을 나타내는 지표들, 그리고 일본의 물가 지표 등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이라는 큰 변화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의외의 충격에 대비하는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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